간단하고 센스 넘치는 와인 안주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종종 귀하고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경우에 와인 자체의 풍미를 100% 느끼기 위하여 일부러 음식 없이 와인만을 마시는 자리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허나 역시 궁합이 맞는 음식과 만났을 때 와인의 매력이 몇 배로 증폭이 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최신 공상과학영화를 흑백으로 보는 듯한, 확실하게 뭔가 빠진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문제는 와인에 걸 맞는 안주를 준비한다는 것이 마냥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맥주나 소주는 끝없이 편안하지만 와인이라고 하면 뭔가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고, 음식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봄직한 그런 요리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엔 쉽게 준비할 수 있는 와인 안주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캐주얼 한 와인 안주를 준비할 때는 과감하게 틀에서 벗어나 보자.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의 경계도 잊어도 좋겠다.



• 카나페: 크래커나 작게 썬 구운 식빵의 한쪽에 맘에 드는 여러 가지 조합의 토핑을 얹어 만드는 카나페을 만들 때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많다. 과일, 야채, 치즈, 견과류뿐 아니라 새우, 캔 참치, 올리브 등 창의성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는 훌륭한 안주를 10분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모듬꼬치: 카나페와 마찬가지로 무한대의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방울토마토, 작게 썬 소고기나 닭고기 조각, 소시지, 스팸, 피망, 양파, 버섯 등의 재료가 얼른 떠오른다. 다만 불에 구워야 하는 음식이니 치즈 조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소스 보다는 소금 후추 간을 하는 것이 와인에 따라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 홍합찜(스튜): 홍합은 짧은 시간에 비쥬얼이 좋은 안주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재료이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 놓고, 올리브유에 다진 마늘, 매운 사천고추, 다진 양파를 넣고 볶다가 물, 화이트 와인을 각 한 컵 정도 붓고 홍합을 넣어 같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토마토를 큼직큼직 하게 썰어 넣고 어른 숟가락으로 케첩 4, 간장 2, 식초1, 설탕 1 추가 하여 5분 정도 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끝. 마늘빵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 치즈 보드: 이도 저도 귀찮고 여러 재료를 동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치즈가 답이다. 어떤 치즈가 어떤 와인에 어울리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지만 기억이 안 나도 좋다. 여러 치즈를 섞어 내 놓고 먹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골라 먹게 하면 그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단 비슷한 치즈들이 겹치지 않게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모짜렐라, 체다, 블루치즈 이렇게 각기 성격차이가 나는 스펙트럼을 갖추면 안전하다고 볼 수 있겠다.



• 까수엘라: 까수엘라는 냄비라는 뜻이다. 냄비에 주 재료와 올리브유를 넣고 끓이는 간단하지만 멋진 와인 안주이다. 두꺼운 무쇠냄비이면 좋겠지만 없다면 뚝배기에 해도 온도가 오래 지속되고 좋다. 올리브유를 넉넉히 넣은 냄비에 얇게 썬 마늘과 매운 고추를 넣어 익힌다. 마늘이 다 익었다 싶으면 손질해서 물기를 뺀 새우를 넣고 2~3분 정도 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완성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주가 바로 <감바스 알 아히요 까수엘라>이다. 이름이 거창하지만 감바스(새우)와 아히요(마늘)을 곁들인 냄비요리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아보카도를 까서 씨를 빼고 썰어놓은 위에 소금을 살짝 뿌린다던가, 주사위모양으로 썬 치즈와 올리브를 꼬치에 끼워 내 놓는 등 다양한 재료에 색감까지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간단하지만 화려한 와인 안주를 센스만점으로 준비할 수 있다.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