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속삭임 같은 특별한 와인, 샴페인
술은 오랫동안 남성 고유의 세계였다. 그래서 그런지 와인을 마시면서 남자들은 와인의 맛과 향을 표현할 때 여성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뇽 블랑」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소녀와 같다든지, 잘 만든 「샤르도네」를 완숙미를 풍기는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와인을 마시는 여인들이 늘어가니 어쩌면 꽃 미남 같다든지, 근육질의 남성미가 느껴진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어울리는 와인, 제왕의 풍모와 여왕의 기품이 동시에 느껴지는 특별한 와인이 바로 샴페인이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전쟁에 이겼을 때 샴페인이 필요하고, 패배했을 때도 샴페인은 필요하다』고 했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은 『아무리 마셔도 여자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는 유일한 술』이라고 칭송했다.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는 6월과 흰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양쪽 모두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다면 바로 샴페인이 아닐까? 셀 수 없는 작은 기포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한잔의 시원한 샴페인은 뜨거운 햇살을 잊게 해주는 데 제격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의미를 나눌 때, 또한 새 생명의 탄생, 결혼, 기념일, 승진 등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순간에 가장 적합한 와인이 곧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원산지의 명칭으로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샴페인(Champagne, 프랑스어로는 샹파뉴라고 발음) 지방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에만 쓸 수 있는 용어다. 프랑스의 다른 지방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심지어는 와인이 아닌 다른 상품에도 샴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은 「샴페인」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출시하려다 결국에는 「이브레스(Yveress, 취기)」라고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파클링 와인 생산자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와인을 샴페인이라 표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샴페인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샴페인 지방은 파리에서 북동쪽 145km 거리에 위치하며, 북위 49도 포도 재배 북방 한계선에 자리하고 있다. 샴페인의 색깔은 대부분 화이트이지만 샴페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포도는 적포도 두 가지와 청포도 한 가지다.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샴페인 지역에서의 포도 수확은 직접 손으로 하며 수확 시 바로 압착해 붉은색이 물들지 않도록 주의한다.
샴페인에 사용하는 적포도는 피노 누아와 피노 므니외 품종이며 청포도 품종으로는 샤르도네가 사용된다. 적포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샴페인은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보다 힘있고 구조감이 탄탄하게 느껴진다. 드물게 샤르도네 단일 품종만으로 생산하거나, 피노 누아와 피노 므니외의 적포도 품종만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두 가지 이상의 품종을 블렌딩해 생산한다. 매우 소량이지만 주황빛 혹은 분홍 장미꽃잎 같은 색상의 로제 샴페인도 찾아볼 수 있다.
샴페인의 라벨에서 「브뤼트(Brut)」라는 용어를 볼 수 있다. 브뤼트는 특정 샴페인의 제품명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샴페인이 함유하고 있는 잔류 당분의 정도, 즉 샴페인의 단맛을 가리킨다. 많은 고급 샴페인들이 대부분 브뤼트 정도로 생산되기 때문에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좀더 저렴하고 대중적인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는 잔류 당분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드미-섹(Demi-Sec)」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와인과 구분되는 샴페인의 특징으로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 표기 여부를 들 수 있다. 전체 샴페인 생산의 90%는 서너 가지의 빈티지를 혼합해 생산하는 넌-빈티지 (Non-Vintage) 샴페인이다. 일반적인 와인에서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대량 생산하는 저렴한 와인이지만, 샴페인은 조금 다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샴페인 지방은 북위 49도의 포도 재배 북방한계선에 위치하고 있어, 제대로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하기 매우 어렵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매년 빈티지 샴페인이 생산되지 못하며, 각 샴페인 하우스의 스타일은 넌-빈티지 샴페인에서 알 수 있다.
샴페인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는 준비가 조금 필요하다. 샴페인은 화이트 와인과 마찬가지로 8~10℃ 정도로 시원하게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샴페인 한 병을 차갑게 하기 위해서는 냉장고를 이용할 경우 3시간 이상 넣어 두어야 하며, 아이스 버켓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물과 얼음을 동량으로 채운 후 30분 정도 담가 두어야 한다. 샴페인의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미세하고 풍부한 거품이 있다. 이러한 시각적인 기쁨을 위해서 샴페인 글라스는 가늘고 길쭉한 튤립 꽃봉오리 모양의 글라스를 사용한다. 넌-빈티지의 경우 좀더 갸름하고 작은 반면, 빈티지 샴페인은 글라스의 크기가 더 큼직하다.
샴페인 한 병에는 버스 타이어에 맞먹는 압력이 있으므로, 샴페인을 마시기 전에 흔들거나 급작스러운 온도 변화는 매우 위험하다. 스포츠 경기나 영화 등에서 샴페인을 세게 흔들어 「펑」 소리와 함께 터뜨리는 것은 샴페인 에티켓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이다. 특히 고급 샴페인을 여는 경우에는 「연인의 속삭임 같은 소리가 나야 한다」고 표현한다.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