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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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좀 아시나요?(14)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 중에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본 게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받고 한 참을 머뭇거린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나서 빈곤한 나의 책장을 뒤져보다가 시집 몇 권이 눈에 들었다. 그 중 한 권을 휘리릭 읽어 내리고 나서, 내친김에 인터넷을 뒤지며 수 년 만에 문학 체험을 하다가 이 칼럼에 소개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을 찾아냈다.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시의 그늘 때문일까? 같은 시집에 실려있지만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명작(名作)이다.

포도주
가을바람과 아침 볕에 마침 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고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입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 잎 잔에 가득히 부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을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님이여, 그 술은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님이여.

명언과 시(詩)에서 독보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사랑>이다. 그 다음을 잇는 소재들이 <자유>, <죽음>, <와인> 이라는 말이 있는걸 보면 와인에 대한 예찬이 얼마나 자자한지 실감이 난다. 철학자, 문학가, 혹은 지도자들 할 것 없이 수 많은 위인들이 앞 다투어 와인을 칭송해 왔던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의미에서 와인에 관련 된 명언들을 몇 개 꼽아 볼까 한다.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In vino veritas)” – 와인 명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알카이오스(Alcaeus)가 남긴 말이다. 칸트 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인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와인에는 진실이 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진실과 건배한다”. 프리드리히 헤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칼 마르크스가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믿을 때는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와인은 병에 담긴 시” –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영국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남긴 말이다. 긴장을 해소해 주며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주고 판타지를 갖게 한다는 면에서 와인과 예술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와인과 예술은 자주 비교된다. 왈츠의 왕이라고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도 “왈츠와 한 잔의 와인에는 앙코르가 따른다”고 말해 자신의 음악과 와인의 인기를 비교하기도 했다.

•“좋은 와인은 무언가 기분 좋은 것을 남기지만 평범한 와인은 그냥 떠나 버린다” “The fine wine leaves you with something pleasant; the ordinary wine just leaves.” – 일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메이너드 아메린(Maynard Amerine)이 한 유명한 말이다. 영어 단어 가 가지는 두 가지의 뜻. <남기다>, 와 <떠나다> 를 이용한 멋진 표현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 – 이 또한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세계적인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와인에 대한 짙은 사랑이 묻어나는 한 마디이다.

•“와인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만, 사랑은 자유를 앗아간다. 와인은 우리를 왕자로 만들지만, 사랑은 우리를 거지로 만든다.”“Wine gives us liberty, love takes it away. Wine makes us princes, love makes us beggars. ” –영국의 대표 희극작가인 윌리엄 위철리(William Wycherley) 처럼 사랑에 대한 독설과 와인에 대한 예찬을 극적으로 비유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명언들은 와인이 환희의 순간에는 축배로, 고뇌의 지성에게는 영감으로, 지친 영혼에게는 위로로 우리의 곁에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는 증거들이 아닐까? 주옥 같은 명언 중에서도 필자가 참 좋아하는 한 문장으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영국 작가 스테판 필립스(Stephen Phillips)의 이 말은 한 살, 한 살 늘어나는 나이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에 큰 위로가 되어 준다.

“I am not old but mellow like good wine.”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처럼 익어간다”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

김상훈 칼럼니스트
The Wine & Spirit Education Trust (WSET) Level II,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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