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들어 맞는 해가 또 있었던가 싶다. 예년 같았으면 이맘때에 모임도 많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와인 한 잔 기울일 기회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연말은 분위기상 소주나 맥주보다는 와인을 떠올리기 좋은 때가 아닐까?
와인 칼럼에 대한 제안을 받고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와인이 바로 그런 느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 막연하고 거리감 있고 왠지 모르게 어려운 존재.
앞으로 와인 이야기를 연재 하면서 중심을 맞출 독자는 와인과 아직 친해지지 못한 왕초보들 임을 미리 이야기 해 둔다.
와인에 대해 장황한 지식을 늘어 놓기 전에 먼저 선입견에 대해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답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수도 있겠다. 그 다음으로는 “복잡하다”, “어렵다”,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와인은 그렇게도 어렵고, 복잡하며 한국사람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그런 녀석들일까? 대답은 절대로 결단코 “NO” 라고 자신 있게 대답 할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까지 낯설고 어색한 단계를 거치는 것은 너무도 일반적인 것처럼 와인과의 관계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굳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와인을 좀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사실 그런 사람들이라고 반드시 와인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게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의 입맛과 잘 맞지 않다고 쉽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와인은 대개 음식과 함께 할 때 더욱 맛있다. 매콤한 양념통닭에서부터, 불고기나 잡채, 심지어 김치전골에 이르기까지 한식들과 어울리는 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을 알아두면 와인이라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 한결 편안해 질 수 있기에 본 칼럼은 ‘와인 지식’이 아니라 ‘와인 상식’을 전하는 친근한 도우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규모가 있는 리커스토어에 가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매장의 가장 가운데 좋은 자리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와인이 진열 되어 있는 것 보았을 것이다. 왜 그럴까? 와인이 실제로 대중적인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 종류가 방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입맛에 맞는 녀석이 어딘가엔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가 된다. 와인 진열대 사이를 여유 있게 산책하듯 걸으며 오늘 집으로 데려갈 녀석을 하나 고르는 여유는 퇴근길에 누리는 “작은 사치” 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이야기를 시작 해 보자.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얼마나 알고 있나” 를 점검하는 일이다. 당신은 정말 와인에 대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수준인가? 조심스럽게 아닐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빨간 것은 레드 와인(Red Wine)이고, 색이 좀 옅고 좀 더 투명한 것을 화이트 와인(White Wine) 이라고 하는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나가 본다면 붉은 와인은 육류를 먹을 때, 화이트 와인은 생선요리를 먹을 때 마신다더라 하는 정도까지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정도면 시작으로 훌륭하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은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정도의 상식이라면 이미 와인을 크게 둘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으며 심지어 페어링(pairing: 와인과 음식의 짝을 맞추는 일)의 기본까지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들을 들춰보면 이쯤에서 <와인의 역사>, <포도 품종 설명> 같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딱딱한 설명들이 시작 된다. 앞으로 천천히 이야기 할 내용들일 순 있지만 “지금 당장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류가 언제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건 어느 포도가 어떤 특성을 가지건 내가 오늘 맛있게 와인을 즐기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식에 늪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상식에 살을 조금 붙여보면 좋겠다. 사람의 집단을 나누는 기준이 여러 가지(인종, 성별, 연령대, 소득 등) 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와인을 나누는 기준도 참 많다. 앞서 말 했던 것처럼 색으로 구분하는 게 가장 흔한 경우이다.
간단히 말해서 레드 와인은 붉은 포도로 만들어서 색이 붉다. 반대로 화이트 와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포도 같은 품종으로 만들어서 색이 옅다. 여기서 한가지! 포도 껍질을 까보면 붉은 포도라고 해도 속 살은 옅은 색이다.
이렇게 포도껍질을 까서 포도 알맹이만 이용하면 화이트 와인이 되기도 한다.
내친김에 하나 더 알아두자면 화이트 와인에 레드를 조금 섞어 만드는 핑크색이나 주황색을 띠는 로제 와인(Rose Wine)까지 포함 해서 와인을 색에 따라 3가지로 구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와인 좀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크게 한 발을 디딘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