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4월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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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구원의 노래로 치유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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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소망 가운데 작은 예수의 삶을 살게하소서.

변함없이 변화가 많은 세상에 새해가 밝았다. 콜로라도 타임즈 직원님들과 독자 여러분께 새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누리시길 빕니다. 여전히 팬더믹의 우울한 지구촌에 희망의 새날은 동이 터 올랐다. 변화무쌍한 현실은 우리의 중심을 붙잡을 수 없다. 흔들리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억새 풀처럼 땅의 소망을 붙잡을 수 없다.

진정한 소망, 붙잡을 수 있는 밧줄,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영원한 구원의 노래, 그 노래의 약속와 소망뿐이다. 노도광풍같은 2022년 새해에 무엇 때문에 무엇을 바라보고 희망의 노래, 생명의 찬가를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말씀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일 뿐이다.

지난해도, 수많은 인생들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연기를 붙잡고 살아왔다. 실망과 허무, 좌절과 낙담 속에 지친 영혼으로 물끄러미 2022년 새해를 바라본다. 그처럼 세상에 속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 재다짐 속에 걸어온 자취는 상처, 눈물, 후회, 분노, 탄식뿐이다.

에베소서 1장을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목청을 가담 들고 읽어 보자. 모든 잡념을 떨쳐 버리고 골방에서 세밀한 구원의 찬가를 들어보자.

저 천상에서 내 영혼의 깊은 심정에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가? 삼위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의 팡파레가 영혼에 울려 퍼지지 않는가? 지난날 실패와 절망, 낙망과 좌절에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광채가 눈부시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코 명예, 부귀, 건강 등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것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생명, 구원, 죄사함, 영생 등 신령한 복이요, 영원한 복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할 이유와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환란과 역경, 좌절과 실패, 절망과 죽음 앞에서 감사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라스도인들은 그 고난과 환란과 역경의 이유를 알고, 그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종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보장과 소망의 약속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역설적 감사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궁극적 소망 속에 힘차게 외치는 하박국 선자자의 노래요, 바울 사도의 찬양이다.

나는 새해 벽두에 에베소서 1장을 노래하며, 하바국 3장을 찬양하련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 산 소망이 끊어진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복, 신령한 복, 구원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라고 고난과 실패, 좌절과 절망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언제나 물질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중하고 가치있고 영원한 복이 있다.

어떤 경우라고 빼앗거나, 포기되거나, 살아지거나, 끊어지지거나 실망하고 퇴색하지 않는 영원한 복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령한 복, 생명의 복, 구원의 복이다. 그러나 자신도, 그도, 그자도, 왜 신령한 복을 얻은 자가 왜 땅의 썩어질 복에 목을 메며 그것에 올인하며 하늘의 소망까지 포기하고 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70일간 한국 방문으로 감사할 일도 많지만, 슬픈 현실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목회자들, 성도들이 하늘의 소망을 잃고 사는 현실의 모습이다. 그저, 돈, 건강, 자녀, 아파트 한 채, 노회, 총회 임원 한자리, 그것이 마지막, 영원한, 진정한 소망인 양,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아우성치고 발버둥 치고, 권모술수하는 우리의 실상의 모습이 슬프고 불쌍하고 초라하고 안타깝다.

신령한 빛으로 심령의 눈을 열어 말씀을 보자. 에베소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 왕관” 혹은 “인간의 글로 표현된 글 중 가장 거룩한 글”이라고 불리 울 만큼 매우 값진 말씀이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말씀의 사역자인 로이드 존스 목사님 에베소서를 가지고 무려 8년간 설교할 할 만큼, 진리의 보고요, 영혼의 우물이다.

특별히 2021년의 팬더믹의 암울한 해를 돌이켜 본다. 자신과 교회와 주변에 사업의 실패나 패업, 직장을 잃은 힘든 경제고 속에 있는 분들, 질병과 투쟁 생활로 지친 분들, 가족 간의 갈등으로 별거 중에 있는 분들, 불의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분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들 가운데는 “무슨 감사냐?”, “무슨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나의 삶에는 감사라고 눈꼽 만치라고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감사라는 허울 좋은 이야기, 뚱단지 같은 말은 내 앞에서 내배지 말라?” 하면서 영적 분노와 깊은 회의 빠진 분들이 계실 것이다. 거듭 되는 실망의 삶의 정황에서 소스라치는 푸념과 원망, 분노와 역정이 이해가 가고 동정이 가고 더욱이 동병상련의 심정이다.

그러나 2022년 새해 벽두에 오늘 복음 중에 복음인 에베소서 1장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할 이유, 감사를 드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은 기복적인 복을 받을 때,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 노래, 감사, 행복 그리고 소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차원을 초월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현실적이다. 기복적이다.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은 현실을 초월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복이다. 죄사함을 받은 복이다. 하나님의 기업되는 복이다.

우리는 2022년 새해 그 복, 그 소망, 그 약속, 그 감격, 그 기대로 땅의 것을 버리고 하늘에 속해 살자. 그런 은혜의 마음으로 가정, 직장, 교회, 교단을 바라고 보고 섬기고 살자. 팬더믹의 우울한 먹구름도 영원히 빛나는 산 소망을 가릴 수 없다. 어두워진 세상과 무너진 삶의 현실도 부활의 생명을 막을 수 없다.

새해, 일어나자. 새해, 빛이 되자. 새해 성숙하자. 새해 섬기자. 새해 낮아지자. 세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주님의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자. 종말의식을 가지고 영원 것에 시간, 마음, 물질을 드리자.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 동료, 교회, 선교지를 바라보고 무명의 용사로 섬기자. 헌신하자. 발을 씻어드리자. 주님의 향을 발하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자.

*글쓴이 정준모 목사( Ph. D, D.Miss/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전 합동교단 97총회장, 총신 재단 이사, CTS 공동대표이사, 기독신문 이사장, GMS 총재, 총신대, 백석대, 대신대 교수 엮임, 현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리스트, 뉴스파워 미주총괄 본부장, 국제 개혁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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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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