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월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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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아버지의 생가

출퇴근길에 운전을 하고 가다 보면 높다란 전신주에 걸쳐진 굵고 긴 전선줄에 줄지어 나란히 앉아 있는 참새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한꺼번에 날아와 앉았다가 한꺼번에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참새와 빈 전깃줄. 큰언니가 열여섯 살이고 내가 두 살 때였다고 한다. 전신주에서 걸쳐져있던 전깃줄이 합선되어 전깃줄에 한 쪽 끄트머리에 불이 붙었다. 불붙은 전선줄이 떨어지며 공중을 날아 어린 나를 업고 골목길을 걷고 있던 큰언니의 목에 들어붙었다.

큰언니는 기겁을 하며 전깃줄을 쳐냈는데 그전선불이 내 왼쪽 어깨쭉지에 들러붙어 살이 탔다.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심히 나는데도 나는 울지를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나는 통증에 무척 둔감했나보다. 통증뿐이 아니라 신체적인 거슬림에 총체적으로 좀 둔하긴 하다. 덕분에 편한 점이 더 많다.
예전에는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술안주 메뉴로 참새구이가 인기였다. 사람들이 참새를 너무 잡아대는 통에 참새가 씨가 말라 메추리 새끼를 참새라고 속여 구워 팔기도 했다. 속일 걸 속여야지 그렇게 큰 참새가 어디 있단 말인가.
둘째 작은 아버지는 형과 동생들이 서울로 다 떠났어도 충청도에서 여전히 고향을 지키며 살고 계셨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 되면 언니오빠와 보따리 싸 들고 버스타고 기차타고 충청도 작은 아버지 댁에 가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아버지는 밑으로 남동생만 넷이 있었다. 둘째 작은 아버지 네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방앗간도 운영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학 때마다 애들을 내려 보내는 맏동서가 작은 엄마로서는 못마땅했을 것이다. 헌데 명절이나 친척들 경조사가 있을 때 혹은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할 때면 서울 큰 집에 몰려와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마루닫이를 점령하고 몇 날 며칠씩 신세를 졌으니 방학 때마다 오는 애들 손님을 귀찮다고 입도 뻥끗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겨울날 화롯불에 땅콩과 고구마를 구어 먹었던 것과 작은 엄마가 밥때가 되어 부엌 아궁이에 짚으로 불을 떼실 때 곁에 쪼그리고 앉아 불구경하면서 곁불 쬐던 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날은 일찍 어두워오는데 초저녁부터 이부자리 깔고 잠을 자야하는 작은 아버지네 집은 심심했다. 그래서 깜깜한 밤에 고갯길 너머에 있는 외갓집에 밤 마실을 가려고 언니와 둘이 붙어 걸었다. 작년에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는 사람의 귀신이라도 보일까봐 나무를 안 보려 땅만 보고 걸었는데 어찌나 무서웠는지 가까웠던 그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작은 아버지는 병원 없는 시골구석에서 의사 역할도 종종 하셨다. 몸의 여기 저기, 이런 통증과 저런 염증, 그리고 토사곽란 등으로 동네사람들이 찾아오면 정체불명의 염소 똥처럼 생긴 환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더러는 환부를 째서 고름을 짜고 성냥불에 그을린 고약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한 번은 친 딸의 심한 복통을 본인이 조제한 환약으로 다스리면서 병을 키워 며칠 후 급기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초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복막염이 뱃속에서 터졌다던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던가 했는데 그 기억은 불분명하다. 하마터면 본인의 딸을 잡을 뻔 했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었다. 거기다가 작은 아버지는 작은 엄마한테도 엄청 쿠사리를 먹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한테 여전히 돌팔이 의술을 행하셨다.

어느 날인가 외삼촌 할아버지께서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 아무도 살지 않아 다 쓰러져가는 방 두 칸짜리 작은 초가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이 집이 너희 아버지 형제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고 별 느낌이 없었다.

이제 내 안의 그때로 돌아가 그 낡은 초가집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고만 고만한 어린 다섯 소년형제들의 후줄그레한 입성과 순하고 겁 많아 보이는 커다란 눈매, 그리고 합주그리한 입매에 땟국물이 얼룩져 꾀죄죄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어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이 보인다.

없는 집 장남이라 어릴 때부터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해 와야 했던 소년 아버지. 소심한 스물두 살의 청년 권춘명씨와 열여덟 살의 처녀 박옥자양의 옹색한 시골 결혼식. 두 사람의 첫딸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막내 시동생까지 아기 둘을 돌보고 어린 시동생들과 자신의 어린 동생들까지 키우고 건사하는 어린 엄마의 고된 삶도 보인다.
아버지 생가를 깨끗하고 이쁘게 단장하여 마음의 고향처럼 두고두고 찾아가기도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몸은 멀리 있었고 그 시골집 동네는 진작에 모두 고층 아파트단지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아버지 생가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가족과 친척들의 충청도식 느긋함과 해학에 익숙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충청도 출신이라고 하면 그냥 반갑고 사람이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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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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