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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2월 26, 2021
Home 오피니언 권달래 이야기 여여하고 유유자적하게

여여하고 유유자적하게

오빠는 엄마기일에 어김없이 무덤사진을 보내왔다. 정면과 좌우 삼십도 각도에서 찍은 석장의 무덤사진. 묘 앞 석단 위에는 배와 사과, 북어포 등이 간소하게 차려져 있다.
아버지의 기일인 십이월에도 언제나 받아보는 사진이다. 벽제 용미리를 지나 시냇물을 따라 난 포장도로로 빠지면 무덤으로 뒤덮여있는 묘산이 나온다. 그 곳 봉우리들의 한 꼭대기에 부모님의 합장묘가 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큰 누나와 둘째 누나, 넷째 누나와 동생에게 지난 십삼 년 동안 같은 사진을 매해 서너 차례씩 보내준다. 날짜가 비슷한 엄마기일과 구정 설은 합하고, 한식날과 추석명절인데 더러 한 차례 더 있다.
은퇴한 큰 누나와 둘째 누나가 한국으로 놀러갔을 때 오빠가 누나들을 태우고 방문하는 코스로서 봉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컷을 꼭 찍는다. 우리 남매들의 관광 명소라고나 할까. 늘상 같아 뵈는 사진을 받고는 작년에 찍어둔 것을 그냥 또 보낸 거 아녀? 하면서 자매들끼리 농담을 한다.
아주 오래 전 아버지 묘를 이장 하던 때가 생각난다. 수맥이 흐르는 자리라고 하여 몇 해를 벼르다가 이장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나와 오빠가 참관을 했다. 겁이 많은 나는 보고 싶지 않아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우리 아버진데 뭐가 무섭냐며 곁에서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는 오빠를 보며 역시 남자는 남자고 아들은 아들이구나 싶었다.

오빠는 다섯 자매들 중에 아들 하나라 어려서부터 장년이 될 때까지도 마음 여리고 인정 많고 눈물도 많았으며 깔끔하면서 요리도 곧잘 했다. 엄마는 귀하게 얻은 아들을 과하다시피 보호하며 키웠고 아버지는 사내 눔이 저렇게 여려서 어쩌나 끌탕을 하셨었다.
환갑을 넘긴 오빠는 진즉부터 남성성도 커져 무척 씩씩해졌다. 세상의 거친 파고를 넘어 살아남으려니 강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나 역시 힘든 고비를 겪을 때마다 강해져야한다 하고 어금니를 앙 다물고 자신을 몰아붙이며 몸에 힘을 잔뜩 주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안 될 때엔 내가 바라는 것이 그렇게 크고 어마어마한 것도 아닌데 내 인생엔 그 까짓것도 허락이 안 된단 말인가 싶어 마음이 무너져 몸까지 무너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괴로운 마음, 이것 하나만 없앨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건 여여하고 유유자적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간절함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그와 관계된 서적들도 사서 읽고 유투브의 훌륭한 강의들을 섭렵하면서 되풀이해 듣다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던 마음이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
뜻과는 상관없이 절로 일어나는 생각들에 끌려 다니는 정도가 줄어들어갔다. 문득 든 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함을 알아차린 맑은 마음, 순수 이성(에크하르트 톨레가 이름 붙임)이 생각에게 멈추라고 한다. 그러면 모래밭에 쌓아 놨던 모래성이 한 순간에 무너져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랄지 글자랄지 환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 생각이란 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비움으로 남는다.

고요의 행복감.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사실 별 상관이 없었는데 젊을 때엔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싶고 좋은 일로 이름도 날리고 싶은 욕망을 갖는 바람에 결과에 미리 마음을 빼앗겨 고요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인 지금을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채웠었다.
내가 좋아하는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고 마음 졸이다가 드디어 연애를 하게 되면 이 사랑이 변함없이 한결같기를 바라게 된다. 저 사람이 왠지 좋다는 설레임 자체를 즐기고 서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사랑한다는 그 기쁨을 누리고 즐기면 백퍼센트 행복했을 텐데 생각이 먼저 미래로 가는 바람에 맘껏 행복하지 못했다.

나중에 어찌 될지는 그때 가서 그때의 내가 또 잘 알아서 대처하겠지 하고 맡겨둘 일이다. 며칠 후, 몇 달 뒤, 몇 년 후의 일을 지금의 내가 해결하려 했고 며칠 전, 몇 달 전, 몇 년 전에 벌어진 일을 지금의 내가 고쳐보려 했다. 그 바람에 괜한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이 순간 커피 잔에 든 커피를 한 모금 음미하는 것이고 추운 겨울날 거실 창문 앞에 놓인 화분에서 피어난 작은 꽃에 눈을 두는 것이고 창밖에 부는 바람의 소리를 귀에 담으며 자연의 연주를 듣는 것이다.

물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지구라는 행성위에 발 딛으며 걷고 있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하는 그 말은 되새겨 볼수록 맞는 말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병이란다. 우리의 생활 속의 모든 기기들을 통해 매일 매순간 기적을 보고 있다. 수십 년 간, 도를 닦고 닦아 일이 미터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 친 들 그게 뭐 대수인가.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수백 명의 승객들과 그 많은 짐들을 합해 무게가 수십 톤이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공중부양을 하여 저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는데 말이다.

아침이 되면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서 이 몸에 달린 눈을 뜨게 하고 하루 스물 네 시간 이 몸에 달린 코로 저절로 숨이 들고나게 하고 달린 입으로 말도 하고 먹기도 하게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알아차리고 나면 고통도 번뇌도 확 줄어든다.
그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챈 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너! 너는? 나도 여전히 고통도 오고 번뇌도 오지만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은 왔다가 간다, 왔다가 간다 주문처럼 외우며 떨어져 바라다보려 하다 보니 누구 말대로 고통이나 번뇌와의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생겨 완충을 시켜준다. 오토바이 헬멧처럼.

덕분에 아픔도 덜하고 피해도 덜 입는다. 쟤는 지가 알아서 머물 만큼 머물다 갈 테니 냅두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움직인다.
나가서 걷거나 호흡에 집중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있기도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면 매일 같은 삶을 살긴 해도 훨씬 가벼워져 불행에 빠지지 않으니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물질의 풍요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깨달음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바야흐로 깨달음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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