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문화·예술 비가 그친 인왕산, 그림 속 작은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알고 보면 재미있는 명화 ⑧] 비가 그친 인왕산, 그림 속 작은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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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국보 「인왕제색도」에 담긴 풍경과 우정의 이야기

비가 막 그친 서울의 인왕산. 거대한 바위산은 빗물을 머금어 검게 빛나고, 산 아래에는 하얀 안개구름이 피어오른다. 275년 전 한 화가가 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놀랍게도 화려한 색채 없이 검은 먹과 여백만으로 완성한 이 그림은 오늘날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국보로 평가받는다. 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다.

1751년, 당시 76세였던 정선은 자신에게 익숙한 인왕산의 풍경을 그렸다. 작품 제목인 ‘인왕제색’은 비가 그친 뒤 맑아지는 인왕산의 모습을 뜻한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정선이 직접 적은 글씨가 남아 있다. 작품 제목과 자신의 호인 ‘겸재(謙齋)’, 그리고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이라는 기록이다. 이는 1751년 윤5월 하순, 양력으로 7월 무렵에 그림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검은 먹으로 어떻게 비에 젖은 산을 표현했을까?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중앙에 우뚝 솟은 거대한 검은 바위다. 실제 인왕산의 화강암은 대체로 밝은 회색이지만, 정선의 그림에서는 검은색에 가깝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선은 진한 먹을 묻힌 붓을 여러 차례 힘차게 내려 그어 비에 젖은 바위의 묵직한 느낌을 표현했다. 먹의 농도를 조절해 깊은 골짜기와 돌출된 바위를 구분하고, 거친 붓질로 산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반면 산 아래쪽은 전혀 다르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공간에는 먹을 거의 칠하지 않았다. 검게 표현한 산과 하얗게 남겨둔 안개구름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실제로 구름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먹의 농담과 여백만으로 자연의 생동감을 표현한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평생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린 그림?

그림 아래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울창한 나무 사이에 작은 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을 둘러싸고 미술사학계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선에게는 이병연이라는 평생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런데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제작할 무렵 이병연은 병을 앓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그림 속 작은 집을 이병연의 집으로 해석했다. 정선이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며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는 인왕산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비가 그친 뒤 맑아지는 산처럼 친구의 병도 깨끗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이 확정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그림 속 집이 정선 자신의 집이거나 다른 후원자와 관련된 장소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선이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림 속 작은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이었을까? 지금도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실제 인왕산보다 더 웅장하게 그렸다?

「인왕제색도」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정선이 실제 우리나라의 산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산수화의 전통을 따르는 그림이 널리 그려졌다. 그러나 정선은 금강산과 인왕산 등 우리나라의 실제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다.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사진처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정선은 인왕산의 치마바위를 실제보다 높게 표현하고, 한자리에서 동시에 보기 어려운 수성동 계곡과 청풍계까지 하나의 화면에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풍경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산의 웅장함과 공간감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도록 화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270년을 넘어 국민의 품으로

「인왕제색도」는 1984년 국보로 지정됐다. 이 작품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열린 한국 미술품 미국 순회전에도 출품돼 해외에 소개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개인 소장품이었던 작품은 2021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국가 소장 문화유산이 됐다.

그림이 완성된 지 275년이 흘렀지만, 비가 그친 인왕산의 풍경은 여전히 생생하다. 검은 바위와 하얀 안개, 그 사이에 자리한 작은 집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인왕제색도」를 직접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거대한 산봉우리만 바라보지 말자. 산 아래 피어오르는 안개와 그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집도 찾아보자. 정선이 남긴 그림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작품 정보: 겸재 정선(1676~1759),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년, 종이에 먹, 약 79.2×13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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