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6월 13, 2024

안나의 집을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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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사회에 귀감이 되는 사람을 찾아서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의 스토리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 코너는 사람을 알리거나 특정인을 높이기 위하여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어서 묵묵히 봉사하는 손길을 찾아내고 그들의 수고와 사랑을 기록하므로 한인 사회를 아름답게 세워 가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깡통을 주워서 판 돈을 저금하는 깡통 통장은 안나의 집을 세우는 종잣돈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우겠다는 뜻을 함께한 수녀님들과 신자들은 묵묵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당 주변을 산책할 때마다 깡통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산책하러 가지만 산책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꽃이 피었는지,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살필 여유가 없었습니다. 눈은 오로지 땅에 떨어져 있거나 풀숲에 버려진 깡통에 가 있었습니다.
깡통을 주워들고 놀란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음식물이 남아있는 깡통 속에 벌레가 가득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신자 중에는 가족 소풍을 나갈 때면 음료수 캔을 자루 가득 모아서 가지고 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또 자기 집 주변의 쓰레기통을 뒤져 깡통을 모아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한 마음 한뜻이었습니다. 시작은 이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깡통 모으기였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보니 통장에는 600달러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저금통장을 ‘깡통통장’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깡통을 모아 팔아서 저금하는 통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한인 양로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알렸습니다. 하나씩 둘씩 돕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사람이 모이지만 깡통 통장에 쌓인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신자 부부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안나의 집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인 양로원은 이미 다른 곳에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신자 한 분이 자신의 집에서 주변 어르신 세 분과 친정어머니까지 모두 네 분을 모시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안나의 집’으로 정해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집과 시설을 기증할 테니 할머니들을 맡아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수녀님들이 어르신들을 훨씬 더 잘 돌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냐고 하면서요. 당시에 그 신자 부부는 일하면서 버는 수입 대부분을 어르신들 돌보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돈이 부족했고 좀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친정어머니만 모시고 있는 상황에서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식사를 준비해 드려도 되지만 함께 사는 어르신들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부는 어르신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해서 가슴 아파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이들 부부가 식사를 직접 차려드려야 드시는 분도 있어서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부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직장 생활과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15년 동안 해 왔는데 이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고 모든 어르신이 어머니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몸이 견뎌내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한국의 본원에 요청하였지만 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수녀님들이 할머니들을 맡아 달라는 요청에 한국의 본원에 문의하였습니다. 요청을 받은 본원에서는 이 일을 두고 회의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한국 내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까지 가서 이런 일을 꼭 해야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의견을 내는 위원들이 많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에 가서 살 정도면 괜찮은 형편 아니겠냐는 이야기였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힘든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도 많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녀님들은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냈습니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인 어르신을 위한 양로원이 꼭 필요한데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요. 수녀님들이 흘린 눈물이 기도처의 바닥을 흥건히 적신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신자 부부가 맡아서 하는 시설은 문을 닫지 않고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견뎌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부의 삶은 누가 보더라도 눈시울을 붉힐 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희생과 사랑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깡통 모으는 일도 계속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수녀회에서 맡으면 좋겠다, 교구에서 맡는 것이 좋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본원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년 만에 본원에서 안나의 집을 맡으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마침 날씨도 쾌청하고 그날따라 수녀님들의 마음이 감사와 은혜로 넘치던 날이었습니다. 본원에서 인수하라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소식을 들은 수녀님들은 한마음으로 감사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을 섬기면서 그들의 마지막 삶을 살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비로소 친정어머니를 직접 돌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설레고 기뻤습니다.
신자 부부는 침대, TV, 개인 옷가지만 가지고 콜로라도 북쪽 먼 곳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집과 살림살이는 물론 가재도구까지 모든 것을 기증하고 거의 맨몸으로 떠난 것입니다. 물론 수녀님들은 이사회를 만들고 구체적으로 인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원에 있는 본원에서도 수녀님들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시청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간호학 교수 한 분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이 분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닐 밴을 구입하는 비용도 기꺼이 후원하였습니다. 설립 초기는 물론 지금도 봉사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물질을 헌신함으로 어르신들이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바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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