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9월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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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아 쟤 아시안이야(Oh, she’s an Asian).”

약 10년 전 유학생활을 위해 한국에서 이민을 와 콜로라도 덴버에 정착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늦은 오후 수업을 마치고 캠퍼스 주변에서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식당에서 부리또와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백인 학생들이 뒤돌아서있던 내게 말을 걸며 “Hey, I like your hat”라고 내 옷차림을 칭찬했다. 고맙기도 하고 그렇게 갑자기 말을 걸어오기도 하는 미국생활이 아직 낯설었던 필자는 얼떨떨한 심정에 돌아서서 “Thank you”라고 말하려고 웃어보이자 한 남학생이 말했다. “아 쟤 아시안이야(Oh, she’s an Asian).”


얼굴을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미국이 거대한 용광로(Melting Pot)는 무슨. 그들의 편협함에 작은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지만 쿨하게 한마디 건네며 넘겼다.
“넌 백인이잖아(Hey, you are White).”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매우 비슷한 상황에 또 다시 직면한 경험이 있다. 덴버 다운타운의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던 도중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 쪽에 줄을 섰는데, 최근 다시 확산되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염두하며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인파 속에 줄을 서있던 내게 덩치 큰 한 백인남성이 볼멘소리로 크게 말했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 왜 여기서 장을 보냐(Go back to your country! Why you shop here)?”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주변 사람들은 그 상황을 외면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도 외면했다. 최근 계속 상승하는 인종 혐오 범죄율이 떠올랐고 당시 처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 두려워 못 들은 체 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었던 노골적인 인종차별 말고도 최근 나를 스쳐갔던 무수히 많은 미세 차별이 있었다.


이렇게 심화되는 아시안 혐오감정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 코로나 판데믹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는 위험한 수위를 넘어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역사적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백인 민족주의 득세와 소수 민족에 대한 적개심 확산 등을 경고해온 미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 혐오범죄가 12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30일 월요일 “현재 미국에서 12년 만에 가장 많은 인종 혐오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증오범죄 연례 보고서를 공개했다. FBI는 美 전국 1만 5천여 개 사법기관이 보고한 현황을 집계한 결과, 코로나 판데믹이 정점을 찍던 작년에 발생한 증오범죄는 지난 2008년 이래 가장 많은 7,759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증오범죄 건수와 비교하면 6 퍼센트나 늘어난 수치다.

미국 연방수사국이 집계한 증오범죄 현황 (사진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과 맞물린 아시아계를 겨냥한 공격 행위는 2019년 148건에서 지난해 274건으로 73.4 퍼센트나 급증했다. 범죄 유형 별로는 협박이 53.4 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단순 폭행(27.6 퍼센트)과 가중폭행(18.1 퍼센트)이 뒤를 이었다. 또한 증오범죄와 결부돼 22건의 살인사건과 19건의 강간사건도 발생했다.


콜로라도주의 자율신고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65 퍼센트의 사건들이 욕설 등 언어적 괴롭힘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고, 12.6 퍼센트는 폭행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미 증오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의 자료 분석 통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 주요 16개 도시에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전년보다 149 퍼센트 증가했다.


의회 민주당과 인권 옹호자들은 지역 경찰들이 증오 범죄를 식별하고 분류하는 방법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고 수사에 충분한 지원이나 관심이 없다며 “증오 범죄와 인종 차별범죄의 급증률을 크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게다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중국을 비난하는 등 계속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펼치며 외국인 혐오 언어를 사용한 것도 아시아인들에 대한 반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시작된 중국에 대한 증오 감정이 아시안 커뮤니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콜로라도 전역에서도 아시안계 대상 혐오 범죄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경각심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는 인종 차별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고, 우리 자신 또한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아시안계 미국인 여성작가들이 크고 작은 무대에서 주목을 받으며 그들의 책을 통해 미국 내 소수민족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매우 반갑다. 이들의 목소리는 이민자 2세대의 자전적인 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수적 감정을 지닌 이들에게 이어지고, 또 전달된다.


최근 읽은 책 중 한국계 미국인 여성작가가 책 마지막에 적은 글귀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우리는 늘 이 나라에 있었던 존재다.”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현 미국의 인종차별 악화와 인종 혐오범죄율, 그리고 이를 쌓아올리는 미국의 낡은 인종서사가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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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원 기자
고려대학교 국제학 BA · 고려대학교 언론학 BA · 덴버대학교 국제안보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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