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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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할 거 하나도 없다

남자와 같이 사는 것은 24년간의 결혼생활로 충분했고 이제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굳게 마음먹고 지난 십일 년 동안 혼자서 웃고 울며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다가 마음을 고쳐먹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오십 중반의 노처녀가 스님에게 묻기를 이 나이에 이제서 결혼을 해도 될지 안 될지를 여쭸다. 혼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으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보니 누군가와 같이 살면 덜 외롭고 아플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남자랑 같이 살아본 적이 없어 이 나이에 결혼 했다가 얼마안가 후회하게 될까봐 겁도 난다고 했다.


늙어가는 싱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되는 딜레마이리라. 그에 대한 스님의 설은 이랬다. 그 나이에 결혼해서 애를 낳을 것도 아닌데 뭘 걱정하느냐. 혼자서 늙어가려니 너무 외롭다 싶으면 마땅한 남자 만나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는 것도 좋다, 같이 사니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점이 많거들랑 계속 살면 되고 살아보니 혼자 사느니만 영 못하다 싶으면 혼자 삶으로 다시 돌아가도 딸린 애가 없으니 걸릴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혼자로 다시 돌아와 어느 만큼 지내보니 역시나 외로워 죽것다 싶으면 또 누구랑 살아도 그 나이에는 괜찮다, 왜냐면 당신이 혼자 살건 누구랑 같이 살건 남에게 해를 주는 게 아니면 문제될 건 하나도 없다는 명답명설을 해주셨다.


나 역시 그런 갈등 속에 있던 중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속 시원하게 답을 주셨다. 아하, 이 나이에는 심각할 게 없는 것이구나 싶어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젊디젊던 이십 대 때에는 나와 다른 성격에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는 듯 싶은 사람에게 저절로 끌렸었다. 왜 그런지 그땐 몰랐는데 이 책 저 책, 이 강의 저 강의 듣다보니까 그것이 본능이라고 한다. 현재의 나보다 더 건강하고 다양한 능력을 소유한 후세를 보고자 하는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이성에 끌리게 만든다고 한다.


몇 년 전 스웨덴의 어느 유전학 연구 기관에서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취약한 부분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그의 땀 냄새를 감지하여 알아 낸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본인들은 끌리는 그 이유를 딱히 모르기 때문에 뇌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둘러댄다고 한다.


거친 야생에서 온갖 위험을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을 갖고있는 쪽이 유리하니까 오랜 세월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저절로 키워 진 본능이 바로 더 나은 이세를 만들어낼 상대방을 찾아내는 감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야생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남성 중에서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것은 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키워놓아 더 이상 아이를 만들 필요가 없어지면 남편과 자신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이 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는, 연애 할 때에는 자기와 다른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결혼해서 같이 오래 살다보니 그것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환갑이 내일 모레인 나이가 되어 공통점이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편하고 재미있다. 2세를 만들 일도 없고 만들 수도 없으니 나와 다른 성격이나 취향의 이성에게 끌려야 할 동기가 없어져서 그런가보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살면 상호간에 이해받고 이해하기가 쉬워 좀 더 편하게 살아질 것도 같다. 함께 해온 세월이 오래라 비슷해졌으면 계속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만 늦게 만날 바에는 비슷한 사람과 함께 하는 쪽이 좋지 싶다.


배추가 이렇게 생겼든 저렇게 생겼든 간에 소금에 푹 절어지면 다 축 늘어지듯이 사람도 늙으면 이 성질 저 성질 다 죽어 대충 비슷해진다고도 하지만 사람은 떡갈나무랑은 비슷해도 배추랑은 엄청 달라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을 듯싶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나처럼 바깥 활동을 좋아하지만 집에 틀어박혀 느긋하게 꿈지럭 꿈지럭 거리는 것도 좋아하고 농담하는 코드도 맞아 좋은 친구이자 마음공부를 같이 하는 도반이다.


저녁 식사 후에 강아지를 데리고 둘이서 맨발로 현관문을 나서서 시멘트 보도를 걷다가 잔디밭으로 들어가면 저항 없이 밟혀지는 자연이 짜낸 잔디카펫은 두 발을 시원하고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회복력이 강해 마음껏 밟아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욱 좋다. 잔디는 잔디대로 흙은 흙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맨발에 체중을 실어 딛는 즉시 기분이 상쾌해져 지친 몸과 맘이 위로 되고 치료 된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대지.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면서 넉넉하고 푸근한 존재인 어머니. 맨발로 맨땅을 걷다보니 이래서 어머니와 대지를 붙여 부르는 것이구나 싶다.
어머니가 된 순간부터 절대로 낫지 않는 불치병에 걸라는 것이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맘에 깊이 박혔었는데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가 되어본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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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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