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월 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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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 역병 돌 때 차례 생략…상차림 간소화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 추석(10월 1일, 목요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에 살면서 이때 즈음이 되면 그 옛날 고향 집에 방문하기 위해 몇 시간씩 차 안에 갇혀서 고생했던 기억, 고향에 도착해 가족과 혹은 친구와 만났던 일, 차례상을 위해 분주히 조리하던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고향에 빨리 가기 위해 가장 빠른 노선을 찾고, 음식 장만은 온 가족이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이 장만하면서 이걸 왜 이리 많이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았다.

이민 와서 차례상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필자를 보면서 차라리 스트레스받고 부모님과 형제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진다.

콜로라도에도 이민가정이 많지만 대부분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 어깨너머로 배웠던 차례상 배치는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지만, 일부는 그래도 차례를 지내며 부모님, 조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간단히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님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한국 정부와 공공단체는 몇 년 전부터 상차림 간소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원래 차례와 제사는 간소했다. 전문가들은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면 제례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국학진흥원 또한 보도자료를 통해 잘못된 전통 대신 ‘간소한 상차림’을 권고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제사가 중요한 논란거리가 된 이유는 제사음식을 마련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많게는 30가지가 넘는 제물이 차려진다. 그러다 보니 명절 등을 앞두고 ‘제사 병’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제례 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보면 간장 종지까지 포함해서 19종의 제물이 그려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주자가례에는 과일도 ‘과(果)’로만 그려져 있을 뿐, 조율이시(棗栗梨柿)의 대추 · 밤 · 배 · 감 등과 같이 구체적인 과일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의 진설법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주자가례의 제물(祭物) (한국국학진흥원)

뿐만 아니라 생선은 오늘날처럼 조기나 방어 등이 아니라 ‘어(魚)’로만 표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제사음식의 간소화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원래 전통이었던 셈이다.  

-차례와 제사는 다르다

추석과 설날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다. 

실제로 주자가례에서는 “정초, 동지, 초하루, 보름에는 하루 전에 청소와 재계를 한다. 이튿날 날이 새면 사당 문을 열고 신주를 모셔둔 감실의 발을 걷어 올린다. 신주마다 햇과일이 담긴 쟁반을 탁자 위에 차려둔다. 그리고 찻잔과 받침, 술잔과 받침을 둔다.”고 했다. 

특히 주자가례에서는 정초와 보름 등에 지내는 차례를 제례에 포함하지 않고 ‘예(禮)’로 분류해두었다. 그래서 제사와 달리 밥과 국을 비롯한 제물을 차리지 않고, 계절 과일을 담은 쟁반과 술, 차를 올리는 것이다. 광산김씨 유일재 종가 차례상을 보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광산김씨 유일재 종가 설 차례상 (한국국학진흥원)

이처럼 설날과 추석은 해가 바뀌고 수확의 계절이 되었다는 사실을 조상들에게 고(告)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차례와 제사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차례에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는 원래의 예법을 준수한다면, 조상제사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차례 생략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팬데믹 기간이다. 콜로라도에도 좀처럼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수석연구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조선 시대에도 재해가 있는 경우 제사는 물론 차례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한다. 

조선 시대 여러 자료를 보면 “나라에 역병이 돌아 차례를 지낼 수 없다.”, “ 마마가 극성이라 마을에서 논의한 끝에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등 여러 내용도 담겨 있다. 천연두나 홍역 같은 전염병 때문에 나라가 힘들 때 명절 차례와 제사를 포기했다는 기록이다.

김미영 수석연구원도 “우리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이 예를 지키지 않는것이 아니다. ‘예(禮)’는 때와 상황에 맞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형식보다는 정성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접촉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민 생활의 추석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더 간절하게 만든다. 차례상은 간소화하고, 사람과 모임을 자제 해야 한다. 올해는 가족끼리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물 최소화로 지구를 보호하며, 온라인으로 친지의 안부를 묻는 현명한 추석맞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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