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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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의 알레스카

산행을 못간지가 넉 달이 됬다. 주말이면 이틀 내리 산을 오르내리며 그 얼마나 행복했던가.
두달 된 초코를 등산 자켓 앞섶에 품고 걸어 올라가다 낑낑거려 내려놓으면 영락없이 오줌을 찍 쌌다. 물 한 모금 먹이고 나도 목을 축이고 다시 오르다보면 처음 사십 여 분간은 힘들지만 그 뒤부터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허벅지의 통증도 쾌감을 동반하고 심장도 적응하여 숨쉬기가 훨씬 여유로워진다. 바위 길을 기어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피부에 달디 달다.
집에서 삼십분 운전해서 가면 나오는 볼더 마운틴 새들롹 트레일을 따라 두시간정도 올라가면 더 이상 개를 데리고 가면 안 되는 지점이 나오는데 그곳이 내가 정한 정상이다. 중간 중간에 볼더시가 다 내려다 보이고 둘째언니네가 사는 롱몬시와 나와 넷째언니가 사는 노스글렌까지도 멀리 보여 이 정도에서 내려갈까 하는 유혹을 느꼈던 초보 하이커 시절도 있었지마는 그건 옛날이야기이다.

삼년전 전부터 하이킹 앱을 다운받아 콜로라도 산들의 많고 많은 트레일들중에 내게 맞을 만한 두어 시간짜리 코스를 시작으로 하이킹을 시작했다. 바버샾이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인지라 일요일엔 친구와 같이 오르고 월요일엔 홀로 산행을 했는데 홀로 하는 산행은 그 맛이 또 다르다. 파트너가 있으면 깔깔대는 재미가 있는 대신 걷는 보조를 맞춰야하고 뭔가 이야기를 나눠야하는 분위기지만 혼자라서 입은 닫고 산길의 나무들과 야생화들, 잔돌과 바위, 숲의 포근함과 향기로운 바람과 하나가 되는 기쁨이 있다. 일터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며 하이킹 이야기를 꺼내면 역시 하이커인 손님과 산행의 기쁨과 잇점에 대해서 서로 눈을 빛내며 공통화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으며 손님이 좋은 코스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조금씩높고 긴 코스에 도전을 하던 중, 동료인 백인청년이 추천해준 Pitkins trail 을 그 주말에 가게 되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간 그곳은 등산로 초입서부터 철철 흘려 넘치는 계곡을 끼고 걸어 올라가게 되어있었는데 당귀나물이 집단으로 퍼져 밭을 이루고 있었으며 계곡 폭포소리에 대화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물이 쏟아져 철철 흘러 넘쳐내리며 물보라를 일으켜 유월 초 더운 날씨였음에도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져 써늘했다. 초입서부터 경사가 높아 조금 이러다가 말겠지 했으나 계속된 가파른 산길에 허벅지가 금새 아파와 지난 코스들과는 다르리라는 느낌이 진즉부터 들었다. 올라가다보니 우리보다 앞서 시작한 세 명의 백인 남성 팀을 만났는데 그중에 유난히 뚱뚱한 사람이 한명 끼어있었고 그사람 때문인지 십분마다 쉬는 통에 그들을 앞질러 오르다 보니 산길이 힘들긴 엄청 힘들었으나 그때까지 다녔던 트레일에 비교가 안 될 만큼 멋지고 아름다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산행을 시작하고 두시간반쯤 되니 열두시를 넘겨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약간 평평한 지형의 물가를 찾아 백 팩을 풀었다. 등산모를 쓴 머리서부터 땀으로 목욕을 해 모자를 벗고 계곡물에 머리부터 감았는데 눈 녹은 산물이라 머리가죽이 벗겨지도록 차가웠지만 어찌나 시원하고 상쾌했는지 모른다. 그늘이 짙은 숲속 물가에 앉아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제육볶음에 밥을 먹었는데 산행와서 이렇게 펼쳐놓고 앉아 먹는 사람들은 아무리 다녀 봐도 우리밖에 없었다. 그들은 칩이나 영양바, 비프저키 정도를 우물우물 씹어 먹고 그게 다다. 나도 그 정도나 가볍게 갖고 다니면서 우물거리고 만지가 꽤 되었지만 초보 때엔 먹는 낙도 없이 어찌 산길을 오르랴 하면서 그렇게 싸들고 다녔었다. 다시 트레일을 따라 올라 가다보니 어릴 때 보았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일가족이 국경을 넘어 자유와 안전을 얻은 멋지고 아름다웠던 그 장면과 유사한 곳이 펼쳐졌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넓고 비스듬한 푸른 들판에 하얀 잔 꽃들이 피어있으며 꽃들 사이로 흐르는 눈 녹은 물길과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야생풀들과 야생화를 만나니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올라갈수록 숨이 더 자주 차서 자주 쉬어야 했는데 이제 거의 다 올라왔나 싶으면 아니고 이 폭포 위에 올라가면 산정에 있다는 핏킨스 레잌이 나오려나 싶으면 아니었고 또 아니었다. 이 멋지고 근사한 등산로에 올라오면서 만난 사람들이래야 다섯팀정도였고 중도에 작파하고 드러누워 쉬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을 열 팀 정도 만났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희박해져 조금만 걸어도 숨이 모자라 쉬어줘야 했고 걷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는 전체 지역이 해발 1600미터라서 어지간한 산에 올라가면 해발 2천 7,8백 미터를 훌쩍 넘는다. 헌데 그곳은 정상이 만이삼천 피트라니 해발 3600여 미터고지 정상에 호수가 있는 것이다.

등산화만 빵빵 할뿐 그렇게 허술한 복장으로 속고 속다가 오르고 올라 정상에 당도하니 천하절경이 펼쳐졌는데….눈 덮인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중간 크기의 호수에는 얼음과 커다란 눈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으며 물은 그야말로 명경지수라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파랗고 맑아서 물위 눈얼음덩어리의 하체가 수면 아래로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는데 물속에 녹지않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물 온도가 영도라는 것이리라. 알래스카에 가보지는 않았으나 꼭 알래스카의 바다를 축소해 놓은 듯 한 모습이었다. 허술한 여름 복장으로 나선 산행이라 정상에 올라서니 어찌나 춥던지 백팩을 뒤져 천이란 천은 다 꺼내어 목에 두르고 다리를 감쌌다. 그날 얼음호수까지 올라온 팀은 세 명의 학생 팀과 우리 뒤로 도착한 남녀커플과 우리뿐이었다.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주고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축하했고 따져보니 올라오는데 꼬박 네 시간 반이 걸렸다. 얼음산과 얼음호수를 홀린 듯 감상하다가 너무 추워서 잠시 앉아 명상을 하고 절경을 뒤로하고 하산 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거저먹기처럼 여겨져 날듯이 내려오다가 풀어진 발목 때문에 두어 번 엎어져 무릎을 깼고 올라간 거리가 있으니 내려오는 데도 두 시간 반은 족히 걸렸다. 여유 있는 하산 길에 운 좋게도 차가버섯을 발견하여 도구가 없음에도 뾰족돌을 찾아서 몇 개 캘 수 있었고 초입의 당귀나물 밭에서 연한 이파리만 뜯어 백 팩을 하나 가득 채웠으며 신선초도 한줌을 뜯었다. 산을 타는 전문인들은 산행할 땐 그 무엇도 채집하지 않는다지만 여기 산에서 그런 풀을 먹을 사람은 우리뿐이다. 해발 삼천 육, 칠백 미터 고지에 일곱 시간의 산행으로 발과 다리가 다 풀리고 몸과 맘이 사라지고 존재감이 없어져버린 듯한 기쁨과 행복감을 맛보고 나니 그 후에 오르는 서너 시간의 산행은 산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가볍게 여겨진다.

역시 그릇은 깨뜨려야한다. 그래야 깨진 조각을 이어 붙여 더 큰 그릇을 만들 수가 있다. 기운과 의욕이 부족할 땐 그냥 하던 만큼만 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견디다가 조금 기운과 의욕이 생기거든 한계를 약간만 넘어보는 거다. 그러면 안 되는 듯 되고 되는 듯 된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콜로라도 거주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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