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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4월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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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증기 기관차, 그리고 스피드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심상치 않다. 그림을 보는 순간 심장이 뛴다. 우선 제작연도와 그의 활동 시기를 보면 상당히 시대적으로 앞선 그림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는 고흐가 태어나기 바로 전 세대의 화가인데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후기 인상파를 넘어서 현대 추상주의에 더 가까울 듯 하다. 형식적인 것들이 생략되고 본질적인 알맹이만 남았다고 할까? 물론 그의 말년 작품에 한해서다. 이건 나에게 중요한 관점이다. 초기의 작품들은 흠 잡을 데 없는 잘 그린 그림들 이지만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나도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온 시간을 바쳐 작업을 한 시기가 있다. 한 물체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되풀이 하여 작업을 하다 보면 결국은 그 물체의 본질만 남게 되는 경험을 했다.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해체되어 재정리 되고 (일련의 피카소 작품들을 보라) 내면으로 들어가면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절대 동감 하게 된다. 터너의 그림 속에서 동 시대를 살았던 베토벤의 격동적인 선율을 나만 느끼는 건가?

“문학에 세익스피어가 있다면 그림엔 터너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영국사람들이 내세우는 국민 화가 터너는 런던의 가난한 이발소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그림 솜씨로 아버지 이발소에 그림을 전시하여 호평을 받았고 그의 아버지는 터너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 당시 이발소는 남자들의 사교 장소 같은 역할도 했다고 하니 터너의 천재적 재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5살 때 그린 그림이 “왕실 미술 아카데미”에 전시되었고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어 화가로서의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일생을 여행과 칩거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 했으며 결혼도 안 했고 친구도 없었고 아버지가 유일한 말벗 이였다고 하니 화가로써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는 하나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평생 풍경화를 그린 터너는 그림 소재를 찾아 스코틀랜드 이태리 등   온 유럽 곳곳을 혼자서 스케치 여행 다니며 수백 권의 스케치북을 남겼다.

나도 풍경화는 본 것만을 그린다는 기본적 생각이 있는데 터너도 그랬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허, 그것 참!

유명해져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말년엔 몇 달씩 사라지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 그리는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았으며 개인전은 하면서도 그림을 안 팔려고 하고 어떤 공적 모임에도 안 나갔으며 왕립 아카데미 교수직도 그만 두고 첼시 (지금은 성공한 영 엔드 리치가 사는 무지하게 집값 비싼 런던 부촌 구역)의 작은 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신분도 감추고 살았다고 한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질렸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예민한 천재형 타입의 완벽주의자인 그가 말년에 그린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비평을 견디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지금이야 각종 부류의 그림을 다 보지만 그 당시 그림은 대부분이 사실적인 묘사가 대세였고 사물과 똑같이 그려야 잘 그렸다고 하던 시절이니 감성을 표현하는 추상에 가까운 그의 말년의 그림을 비평가들이 엄청 비평해 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을 사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빛을 색으로 표현해 내는 터너의 그림에서 인상파 화풍과 추상파 화풍의 원류가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그림은 시대를 초월 한다는 게 진리인가 보다. 또한 동시대 작가 중에 프레드릭 카스파 데이빗 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둘 다 자연을 소재로 삼았으나 두 작가 역시 상당히 다르다. 나중에 프레드릭의 그림도 소개해 보려 한다.

터너의 그림 속엔 서정적인 열정이 있다면 프레드릭 그림 속엔 서사적인 냉정이 있다.

터너는 타고난 작가이다. 그림을 마음으로 그리는 법을 아는 작가인 것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난 벌써 거기에 가 있다. 터너가 되어 눈앞의 광경을 가슴 쓸어 내리며 함께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슴 속의 열정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조금이라도 눈을 떼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까 봐 숨 막힐듯한 긴장감으로 붓을 놀리는 터너의 호흡을 느낀다. 서정적이지만 역동적인 힘의 알맹이가 그의 그림 속에 있음을 안다.

그림 만을 위하여 살았던 그는 1851년 78세로 런던에서 사망했는데 19,000여 점의 유화와 수채화, 풍경을 위한 드로잉이 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위해 태어난 그의 생애에 부러움과 존경을 표한다. 유산은 불우한 화가 들을 지원하는데 쓰도록 했으며 그의 그림들은 국가에 자신의 갤러리를 만드는 조건으로 헌납했다.

터너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린 나의 풍경화 한 작품 소개합니다.

(좌) Snow Storm/1842/Turner
(우) November Pensacola Beach/2020/ Elle Sung

백홍자

• 조각가
• 개인전 2회
• 단체전 다수
• 이화여대 미술대학 조소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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