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만의 잔치’였던 아카데미, <기생충>에 미국사회가 통렬히 공감
계속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소식으로 뉴스만 보면 무거운 마음만 계속되다가 드디어 지난 주, 모처럼 단비 같은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었다.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새 날을 맞은 것. 세계 영화의 메카인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무려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휩쓸었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백인들의 영화지배구조 속에서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을만큼 백인 이외의 타 인종과 이질적 문화에 대해 심각한 폐쇄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할리우드의 높고 견고한 성벽을 뚫고 입성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기생충이 한국 사회 내의 불평등을 악몽처럼 그린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현실은 훨씬 더 나쁘다. 여기 미국에서의 불평등은 봉 감독의 한국보다 훨씬, 훨씬 더 심각하다”라고 꼬집으며 기생충이 전달한 메시지는 전 세계 관객들 중에서도 미국 관객들에게 더욱 강하게 울려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유례없던 역사적인 일이며 이 영화의 미국 내 영향력은 향후 더 커질 것이다”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을 비교하기 위해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의 통계까지 인용해 한국에서는 부를 누리는 최상위 1%가 나라 전체 부의 2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최상위 1%가 나라 전체 부의 39%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또한 소득 면에서도 한국에서는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12%를 벌어들이는 반면, 미국인 상위 1%는 국민소득의 20%이상을 벌어들인다. 미국 내에서 불평등이 커지는 이유는 바로 의회와 부유한 후원자들이 내린 정책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 사이에 공통점도 적지는 않다. 두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들로 두 국가 모두 낮은 실업률을 기록 중이며 2-3% 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매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보편적 보건의료와 노동자 계층을 위한 더 많은 지원책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생충에 미국 사회가 이렇게 열광하고 동요될 수 있었던 점은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높은 청년 실업률과 이로 인한 청년층의 좌절감, 그리고 견고한 계층사회에 대한 무뎌진 좌절감이 처음으로 평범한 미국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대를 산 것이다.
원래 기생충은 바이러스가 없는 해충이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은 바이러스가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나 플루보다 그 전염속도가 훨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벌써 일본도 지난 1월 10일에 개봉했던 기생충에 온 열도가 흠뻑 빠져있다. 우한 폐렴이나 미국의 플루를 전 세계가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반면에, 기생충은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반긴다는 점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흥미롭다.
한편 모두가 기생충에 열광해 나머지 다른 부문 수상에 대해서는 별로 이슈가 되지 않았었지만, 이 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이 심금을 울렸다. “영화가 저와 여기 계신 여러분께 선사한 가장 위대한 선물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의 소리를 우리가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영화의 위대함과 우리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그 파급력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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