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4월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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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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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위로자되시는 성령님

이 세상은 위로를 참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반면 그 인생의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가 없는 세상이다. 필자는 성도를 만나고 병원으로 심방을 하면서 장례식을 집례를 하면서 상담전화를 받으면서 또한 이 세상이 되어지는 일 보면서 더욱이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보혜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보혜사되신 주님과 성령님을 떠나서는 항상 깊은 인생의 고독과 절망과 외로움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인생문제를 일시적 위로를 주고 떠나 가버리는 병문객과 조문객의 인간적 한계를 초월하시고 영원토록 내주하셔서 늘 가까이 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감미로운 대화를 늘 나누시길 바란다.

당시 제자들은 보혜사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요한복음 14장은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시작하여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끝을 맺고 있다.

왜 제자들이 그처럼 마음에 근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을까? 아마 예수님께서 그들 제자 중 하나가 배반자가 생길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일까? 물론 관계가 없지만 않다. 또한 베드로에게 그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일까?

사실 예수님 제자들이나 특히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 자신들이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따른다고 장담했었는데 자신의 마음도 자신들이 예측못하는 주님을 배신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고 또한 자신들을 근심에 빠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요한복음 1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려 하신다는 사실이었다.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그분과 함께 갈 수는 없을까? 그분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분이 가시는 곳을 함께 갈 수 없다면 그분은 다시 그리고 언제 오신다는 말인가? 그분이 안계시면 제자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며 누구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 깊은 절망감에 빠지고 온 마음에는 근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우리 주님은 아시고 이 유명한 다락방 설교를 시작하신 것이다.

영원도록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

이 때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줄 것이니 그가 제자들 안에 거하며 가까이 거하면서 위로와 격려와 도움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8절 말씀처럼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보혜사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실 것을 또한 약속하셨다.

또한 13절, 14절에 제자들에게 기도의 특권을 허락하셔서 어떤 고통, 어떤 고난, 어떤 인생의 문제를 만나게 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며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2절에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과 부족으로 인한 구원의 문제, 장차 우리가 거할 나라 문제를 두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사실 제자들의 고민과 근심 문제가 바로 오늘 우리의 인생 여정 길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대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보혜사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는다면 우리는 정말 참된 행복자이다. 수많은 인생이 외적 조건 속에서 참된 행복을 찾기 위해 붙잡고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나 신기루처럼 달아나고 물거품처럼 살아지고 말기에 더욱 공허감에 빠지고 만다. 더 이상 인간의 고통과 고독과 외로움을 달랠 길 없어 이 방법, 저 방법을 찾으나 아편처럼 결국 더 이상 강한 약과 더 이상 강한 독주가 없을 때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보혜사가 없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보혜사가 되시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우리가 부족하다고 휙 떠나시고 우리가 연약하다고 외면하시고 우리가 어리석다고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더럽다고 침뱉지 않으시고 우리가 미련하다고 비웃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손가락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병들었다고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죄지었다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럴수록 더욱 더 가까이 오셔서 위로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속삭이며 용기를 주시고 다시 한번 달려와 격려를 주시고, 그래요, 잠시 연약해서 실수한 것 같아요 하며 변호해 주시는 어머니 숨결 같고 할머니의 약손 같고 우리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하시길 바란다.

인생의 언제 불쑥 나타날 줄 모르는 고난의 복병이 우리의 평온한 인생길에 불청객처럼 뛰쳐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해고, 파산, 질병, 사고, 이별, 미움, 석별로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고 잠을 못 이루게 하고 마음을 썩게 하고 피를 마르게 하는 고통이 따르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와 너무나 같은 인생의 절망과 근심의 상황 속에 처한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신 이 다락방 설교, 즉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주고 속삭여 주시고 도와주신다고 달래주셨다. 그러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 21세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오늘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보혜사가 되셔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고 감사드린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육을 가지신 참 인간이 셨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으셔야 하셨다. 그래서 당시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들과 함께 거하셨던 유대 땅 고을에 한정 지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대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성령님은 공간과 시간적 제한을 받는 육의 존재가 아니시고 영이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그리고 수많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동시에 역사하시고 동행하시고 위로하시고 사역하시게 되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요한복음 16장 7절에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렇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대신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위로의 성령, 도움의 성령, 상담의 성령, 교사의 성령, 진리의 성령되신 것이다.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은혜가 충만하길 기원한다. 더 이상 보혜사 성령님을 외면하지 말자. 더 이상 보혜사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지 말자. 이제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의 삶을 살자. 그런 은혜가 있는 성령의 봄이 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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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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