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24, 2021
Home 오피니언 권달래 이야기 백번째 원숭이 현상

백번째 원숭이 현상

‘밥상에 뎀벼드는 파리를 쫓아내긴 해야겠는데 것도 불쌍하단 말이지. 지도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인데 간신히 음식에 좀 붙어서 먹어볼라치면 이 할망구가 파리채를 휘둘러대니 말이야. 너희들도 죄 다 불쌍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내느라 몸은 몸대로 맘은 맘대로 저리 애면글면 하는 걸 보면 낫지를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때는 피임이고 뭐고 그런 게 읎었잔녀. 남녀가 몸을 썪으면 애기가 생기고 생기면 생기는 대로 낳는 건 줄로만 알었지, 뭐. 아들 낳을 때까지 낳다보니까 딸들을 다섯이나 낳게 되었고 아들 낳고 나니 아들 하나 더 보려고 낳은 게 너여. 키울 때는 다 귀하고 예뻐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크고 나니 다들 절로 큰 줄 알고 에미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지들 하고 싶은 대로 하더니만 저리들 사서 고생들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아주 속이 상해 죽것어어. 이럴 줄 알았으면 딸이고 아들이고 아예 낫지를 않는 거였는데…’ 하면서 마음이 복잡해 속 풀러 간 막내딸인 나를 앉혀놓고 몇 배나 괴로운 당신의 속을 내게 쏟아냈던 엄마가 생각난다. 언제나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엄마가 파리도 개도 고양이도 인간존재들도 다 불쌍하다고 했듯이 나 역시 그 느낌이다. 이발소에 들어와 머리를 깎아달라는 손님을 의자에 앉혀 놓고 나면 그 존재에 대한 긍휼함이 절로 든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마르면 마른대로 어리면 어린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그래서 머리를 손질해 주는 그 시간 동안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의 에너지를 강하게 흘려보낸다.

가위와 빗을 든 손 끝과 세세히 들여다보는 눈빛에 그저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터치를 한다. 이것은 인생 수업이고 즐거운 여행일 뿐이니 떨어져서 보고 겪고 즐기고 누리라고 영적 지도자들은 한 결 같이 말한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건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크리스찬이건 크리스찬이 아니건 부디스트건 부디스트가 아니건 간에 이것이 다가 아님을 벌써 알고들 있다. 그러면 불쌍하단 느낌은 즉시로 사라지고 손님과 기쁨으로 공명한다. 역시 백한 마리 원숭이 이론이다.
섬에 갇혀 사는 원숭이 무리들 중에 한 마리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먹자 다른 원숭이가 따라서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다. 점점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가 늘어나 백 마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으면 그 섬에 살지 않는 머나먼 육지에 사는 원숭이들까지 저절로 고구마를 씻어 먹는다는 이론이다.

부처와 예수에서 시작된 깨달음이 이천년이 넘어가자 여기저기에서 깨닫는다. 인터넷과 유투브 덕분에 그 속도와 숫자가 더욱 빨라지고 많아져 이것이 다가 아님을 아는 사람들을 쉽사리 만나게 됐다. 백넘버 백번의 깨달은 자를 넘어 백넘버 수십억번의 깨달은 자가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 칠십팔 년이 되기 바로 직전인 이월의 어느 날에 확실한 깨달음에 드셨는데 어쩜 그 전에 이미 깨닫지 않으셨을까 싶다.
생전에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으셨고 부처님도 믿으셨고 젊어서는 스탠대접에 쌀도 담아 장독대에 놓고 정한 수를 떠놓고 빌기도 하셨고 행여나 하수도에 사는 생명체를 죽일 새라 마당의 수채 구멍에 뜨거운 물을 버리는 것을 삼가기도 하셨으니까.

며칠 전 이발소에 들어온 한 손님이 나를 지목하여 머리를 잘라 달라고 하였다. 몇 달 전인가 와서 내게 이발을 받은 백인 손님이란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이는 오십에서 육십 사이이거나 어쩜 더 젊은 나이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늙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딱히 구분이 안가기도 하는데 이 손님이 그렇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항시 띠고 있는 온화한 웃음 때문인지 여자처럼 보인다. 목은 왼쪽으로 구십도 꺾여있고 후두암 수술을 받은 환자로 목의 한 가운데에 숨이 들고 나는 공기구멍이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는 글자 쓰는 패드를 갖고 다녔다. 의자에 앉히자 그가 패드에 글을 쓰기 시작하기에 들여다보았다. ‘당신에게 이발을 받는 것이 좋아요. 젊은 애들은 못되게 굴어요. 예전 여자 친구가 한국여자였는데 카지노 딜러였어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바람에 이렇게 됐는데 며칠 후 다시 암수술을 받아야 해요.’ 그의 말을 읽자마자 마음이 더욱 짠해졌다.

정성들여 머리를 깎은 후에 그에게 ‘Earthing’ 이라는 책을 꼭 사볼 것을 권했다. 수술이 잘 되길 나도 기도드리겠다고 하면서 시한부 말기 암 환자가 맨발로 걷고 한 달 만에 암 덩어리들이 사라진 경우도 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맨발 접지를 하라고 당부하니 그는 어린 아이처럼 천사처럼 환하게 웃으며 당장 그렇게 하겠다면서 이발소를 나갔다.

오징어 게임에선 승자가 하나이나 겪고 배우고 누리려고 참가한 인생게임에서는 우리각자가 모두 승자이다.

하루하루 겪고 배우고 누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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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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