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나름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직 어두운 시간에 일어날 때 마다 누리는 자유가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창문을 열면 하루 종일 별 생각 없이 짖어댈 기회를 찾는 뒷 집 개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을 새벽 바람이 서서, 아무도 없어 더 넓어진 길로 나오라며 미소 짓습니다. 내 할 일이 아직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 진정시킨 후, 서둘러 성도님들께 보내는 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21:37-22:5 을 집중하여 묵상하고는 관찰, 해석, 적용 질문을 만들어서 송권사님께 보내 드립니다. 그녀는 오전 8시가 되면 우리교회 성도님들을 카톡 방에서 말씀으로 도전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몰려들어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시끄럽고 난폭한 말 소리, 소요가 일어나면 책임 있게 진압해야 하는 로마의 천부장과 백부장들, 그리고 잘 훈련된 로마 군인들이 무기를 든 채 긴장하며 바울을 호위하여 압송하는 모습, 말이 안 통할지라도 그 특유의 손짓을 하며 道, 길, Way 를 소개하는 바울의 간절한 얼굴이 성도님들께도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중요한 일 하나를 마쳤으니 아직도 나를 빤히 쳐다보며 기다리는 새벽 바람의 바람을 들어 주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길을 나서려니 오늘은 늘 가던 길을 가기가 망설여집니다. 공원에 들렀다 이웃집들을 지나 시내가 흐르는 길을 옆에 잠시 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 때 흐뭇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몇 일 째 냉장고에 채워지지 않고 있던 우유를 사러 동네 Walgreen 에 가방을 메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GPS 를 확인해 보니, 1마일 조금 넘어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립니다. 새벽 바람도 좋다고 합니다.
길을 나서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시작합니다. 외롭고 단순한 노년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초록과 생명의 신비함을 더하고파 지난 여름 아침 매일 자라는 호박 모습 보여 드렸지만, 이젠 그것도 끝물이라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잘 되었지요. 오늘 가는 길에 새로진 것들이 여럿 있으니까요. 이따금 지나가는 만나보지 못한 이웃 집들, 도로의 자동차, 맑은 하늘과 구름, 무엇 보다 오늘 최고의 발견은 우리 마을에서 저쪽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 밑에 흐르는 개울 소리입니다. 부모님과 저의 그리움이 가실 만큼이 되니 길거리에 멈추어 기도합니다. 오늘은 제 차례여서 아내의 부모님, 시카고의 형, 여행 중인 딸, 그리고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필요를 위합니다. 그러면 그리운 분들과 웃으며 내일을 약속하며 인사할 수 있게 되지요.
Walgreen 파킹장에 들어가니 차 한 대가 나옵니다. 입구에 써 있는 시간표를 보니 문 연지 몇 분 되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냉장고에서 Whole Milk 두 개를 들고 갑니다. 4달러 79센트. 킹수퍼 보다 평균 20센트 싼 우유로 라떼를 만들어 마실 것에 기분 좋아 직원 앞에 내어 놓습니다. 봉투 필요하냐기에 “Save the earth!” 로 응답하며 메고간 가방에 집어넣으니 어쩌면 오늘의 처음 손님일지도 모를 저에게 밝게 인사를 건넵니다.
다시 GPS 를 켜니,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길로 인도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제 인생의 20분을 위해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찬양을 듣다가 음악을 바꾸어 봅니다. 지난 봄 한국에 방문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음악 폴더에서 김광석 씨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들려옵니다. 밝은 멜로디와 희망의 가사로 인해 발걸음이 마악 기분이 좋아지는데, 오른쪽 집 지붕 위에서 일하는 일꾼 중 한 사람도 시인의 노래에 맞추어 저의 친구 새벽 바람과 춤을 추네요!
낯설어 가보지 않은 길을 걷다 보니 오늘 너무나 좋은 것들을 만납니다. 자신을 증오하며 죽이려 따라오는 이들을 향하여 Way, 새로운 길을 걸어 보라 이야기하던 바울은 이미 이 비밀스러운 기쁨을 알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새로운 길,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이끄시는 그곳으로 내일 새벽에도 조금 용기를 내 간단한 가방 메고 나서 보아야겠습니다.
2024년 9월 28일 (토)
가을 새벽 바람과 함께
이성한 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