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덴버 로리 공군기지(Lowry Air Force Base)에서 줄지어 훈련하는 청년들. 미 공군사관학교 첫 생도들이다. 당시 로리는 항공사진과 항공기 무장 분야의 기술 인력을 양성하던 공군 교육기지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콜로라도에서 여름을 보낼 때는 임시 집무실로도 쓰였다. 콜로라도스프링스의 영구 캠퍼스가 완공되기 전, 사관학교는 이곳에 임시 교정을 두었다. 올해 9월 18일 창설 79주년을 맞은 미 공군의 역사는 이렇게 콜로라도와 맞닿아 있다.
미 육군과 해군은 독립전쟁이 시작된 1775년에 기원을 둔다. 공군은 왜 1947년에야 독립했을까. 비행기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1907년 육군은 항공부서를 만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는 육군 산하 항공조직이 공중전을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은 육군항공군이었다. 해군도 항공모함에서 자체 항공기를 운용했다. 1945년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조차 독립 공군이 아닌 육군항공군 소속이었다. 전쟁을 거치며 항공전의 규모와 역할이 커지자 별도 군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공군의 독립을 가능하게 한 법은 백악관이 아닌 비행기 안에서 서명됐다. 1947년 7월 26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용기 ‘세이크리드 카우’에서 국가안보법에 서명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위해 만든 이 비행기에는 휠체어를 탄 그가 오를 수 있도록 전동 승강기까지 달려 있었다. 미 공군박물관이 이 비행기를 공군의 ‘탄생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공군이 독립 군종으로 공식 출범한 날은 그해 9월 18일이다. 스튜어트 사이밍턴이 초대 공군장관에 취임했고, 새 공군의 중앙 참모조직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펜타곤에 자리 잡았다. 덴버 로리 기지는 공군본부의 창설지가 아니라 8년 뒤 사관학교가 처음 문을 연 곳이다.
독립한 지 3년도 지나지 않아 공군은 한국전쟁을 맞았다. 1950년 겨울 장진호에서 철수하던 미군이 끊어진 다리에 막히자 공군 수송기들은 조립식 교량 부품까지 공중 투하했다. 병력과 장비가 빠져나갈 길을 하늘에서 보낸 셈이다.
장교를 키울 공군사관학교가 설립된 것은 1954년이다. 후보지 580곳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콜로라도스프링스의 산과 바람이 비행 훈련을 방해할지 우려가 나왔다.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는 후보지 상공을 직접 날아보고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7월 11일 첫 생도 306명이 덴버 로리 기지에서 선서했다. 당시 생도였던 해럴드 토드는 기지에 들어서자 부사관들이 행진을 시키고 장교가 자신에게 고쳐야 할 점을 줄줄이 지적했다고 회고했다. 나중에야 신입 생도를 맞는 일종의 ‘환영 절차’였음을 알았다. 그는 훗날 사관학교 졸업생 가운데 첫 장군이 됐다.
1958년 8월 29일 생도 1,145명이 콜로라도스프링스 캠퍼스로 옮겼고, 이듬해 첫 기수 207명이 졸업했다. 올해의 ‘79주년’은 미 공군의 나이이고, 1955년 사진에는 그 공군을 이끌 첫 사관학교 생도들의 출발이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