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 뮤지엄(DAM)에서 전시했던 모네전(Oct 21, 2019 – Feb 2, 2020)을 다녀왔다. 그의 그림들은 특별한 미술 지식 없어도 편하게 좋은 경치 구경하듯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다. 꽤 오랜 전시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티켓은 매시간 매진되었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대성공이었다. 한 예술가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참 대단하다..



1840년 파리에서 출생한 모네는 86세로 사망할 때까지 운이 좋은 화가였다. 물론 20대 후반에는 주류 미술전에서 계속 낙방하여 극심한 우울증으로 세느강에 투신하는 일도 있었지만 화가 르노와르와 함께 작업하며 잘 극복해 나갔다고 한다.
1891년 프랑스 복권에 당첨되어 10만 프랑을 받아 지베르니에 정원과 연못이 있는 대저택을 구입하여 그곳에서 수천 점의 수련을 그려냈으며, 지금도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은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모네의 <수련>을 제대로 보려면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봐야 한다는데 그 공간은 특별히 모네의 <수련>을 위해서 설계되어졌다고 한다. 흰 벽면과 햇살, 모네가 요구한 조건이라고 한다. 어떤 젊은 한국인 작곡가는 그곳을 다녀와서 곡도 만들었다니 영감이 마구 떠오를 것 같은 장소이다. 필자는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모네의 공간에서 봤는데 가로길이 13m, 가만히 앉아서 한나절 바라봐도 반짝이는 빛과 수련, 찰랑이는 물이 전혀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5분 감상하기도 힘들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수련> 연작의 방이 둥글게 곡선으로 이어진 벽이 무려 길이 87m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덴버 전시회에서는 수련 작품을 몇 점 밖에는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인상파”라는 용어는 ‘루이 르보이’라는 비평가가 모네 그림을 야유하고 조롱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874년 주류 미술전에서 계속 낙방하는 비주류 무명 화가들이 모네 중심으로 협회전을 열었는데 그때 출품한 모네의 <인상, 해돋이> 그림이 그 대상이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쉽고 평이해 보이지만 그 당시엔 뭔가 유치하고 성실한 노력이 없어 보이는 듯한 미숙하고 기분만 잔뜩 낸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순간의 인상을 포착하여 빛의 효과를 표현했으니 좀 다른 차원의 표현이다.
모네는 60대 후반부터 시력에 문제가 생겨 70대 중반에는 백내장으로 판정받고 80대에는 완전 시력을 잃었지만 2번에 걸친 수술로 죽기 얼마 전에 조금 회복되었다고 하는데 수련 연작을 그릴 때 팔레트 색들을 외워서 그렸다고 한다. 그의 흐릿한 그림들은 비평가들이 ” 예술적 감각이 아니라 시력이 안 보여서”라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하니 비평가들이 비평해서 밥 먹고 사는 방법이 조금은 안쓰럽기까지하다. 어쨌든 시력 상실이 걸작을 만들어 냈으니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느껴진다.
정상적 시력으론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진짜 자연만이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색감을 표현해 냈으니말이다. 덴버 미술관 전시장에서 모네 생전의 비디오를 보며, 줄 담배를 피우고( 폐암으로 사망) 흰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그림을 그리는데 장면이 나오는데 “흰 양복을 입고 그림을 그리다니, 아마 비디오 찍으려고 그랬나?” 하며 혼자서 생각하게한다.
미국 텍사스 주립대 ‘도날드 올슨’이라는 천문학자는 <인상, 해돋이> 그림에 반영된 햇살을 근거로 그림 그려진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아냈는데, 시간과 장소는 1872년 11월 13일 오전 6시 35분 르아브로항 라미라우터 호텔 3층이라고 한다. 그걸 정확히 알아서 뭐하려고 생각했지만, 다시 잠시 생각해 보니 어떤 이에게는 엄청 중요한 이런저런 생각과 검증, 표현과 특별한 열정들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문화는 또 다른 세대로 강물처럼 흘러간다.
모네의 그림들은 100년 이상을 훌쩍 넘어와 그때의 찬란했던 햇살을 그의 그림을 통해 지금 우리는 맘껏 즐기도록 하자. Thank you! Mr. Monet



백홍자
조각가, 개인전 2회, 단체전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