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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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웃음 되찾은 ‘평화의 소녀상’

과이불개시위과의 過而不改是謂過矣

인권운동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유명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듯이, 과오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준다.

지난 9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시민들의 박수 속에 독일에서만 3번째, 공공장소 설치로는 처음인 ‘평화의 소녀상’이 베를린시의 중심지 미테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시의 한인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가 지난 2년여 동안의 노력 끝에 2019년 7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허가 받고, 드디어 2020년 9월 미테구 거리에 세운 것이다.

하지만 설치 한 달 만에 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항의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었다. 소녀상이 공개되자 일본은 전방위적으로 ‘소녀상 철거 작전’에 들어갔고 일본 외무상은 독일 정부에 직접 연락하여 “한일 정치 문제를 끌어들이면 일독 관계가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외교 최고 책임자까지 직접 나서 철거 로비를 해왔다. “한국에서 시작한 위안부상 설치라는 반일 운동의 불똥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까지 튀어 일독 우호에 금이 갈 수 있다. 우리 양국은 역사를 날조하고 일본을 폄하하는 소녀상을 철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뻔뻔함도 덧붙였다.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를 시작으로 캐나다, 호주, 중국, 독일, 대만, 필리핀 등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에 잇따라 설치되었지만, 일본 정부의 설치 방해와 철거 로비로 2016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서는 설치가 무산되었고, 작년 필리핀 소녀상은 설치 이틀만에 철거되었다.

독일의 베를린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겨레)

이처럼 베를린 미테구의 소녀상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한인 시민단체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여 철거명령은 임시 보류되었다. 베를린 시민 약 300여명도 소녀상 철거 명령 철회를 요구하는 자발적 시위로 한인 시민단체의 노력에 호응했고 독일 시민들은 금요일마다 열린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심지어 적잖은 일본인 주민들이 소녀상 설치를 도왔고 뜻을 함께 했다. 역사를 직시하고 인권을 존중하자는 메세지를 담은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되는 것은 독일 수도 베를린 시민들에게도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일, 베를린시의 미테구 의회는 결국 ‘평화의 소녀상’의 영구 설치를 허용하는 결의안을 의결했고 소녀상은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소녀상이 철거되는 줄 알았던 일본 정부로서는 다 된 밥이 엎어지는 모양새였고 일본 외무성도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쾌거의 이면에는 베를린 한인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결연한 의지와 단호한 투쟁이 큰 역할을 했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소녀상 영구 설치의 길이 열린 것과 관련, “베를린 소녀상의 주인은 독일 시민들과 베를린 여성 단체들이다. 독일은 전범국가여서 전쟁 중 성폭력 피해에 대해 지나치게 개방적인 논의는 삼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오히려 시민들의 응원과 참여로 소녀상 철거를 막을 수 있었다. 소녀상이 베를린에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독일과 일본은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이지만, 독일은 그동안 피해국가와 과거사에 대해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독일인들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반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전쟁 기간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여태껏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베를린 소녀상 철거 로비를 통해 반성은 커녕 방해 외교 공작을 펼쳤다. 이 문제는 한일 양국만의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전시 성폭력에 관한 인류 보편의 문제임도 잊지 말아야 하는데, 한일 관계 협력에 대한 역행 뿐만 아니라 역사를 역행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외로운 발버둥이 처량하기까지 하다.

한편 일본의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관련 자료들과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고, 정원 한 켠에는 안네프랑크의 동상이 있다. 기념관 측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통해 평화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예원 기자
고려대학교 국제학 BA · 고려대학교 언론학 BA · 덴버대학교 국제안보학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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