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일요일 5월 9일은 미 전국적으로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기리는 마더스 데이(Mother’s Day), 즉 ‘어머니 날’이다. 마더스 데이는 한 해 중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외식을 하고 한 해 중 가장 많은 꽃과 와인이 팔리는 대표적인 국가기념일들 중 하나이다. 현재 콜로라도에서도 다가오는 마더스 데이를 준비하기 위해 요식업계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다. 날씨가 풀리고 하루 24시간 중 15시간동안 햇살이 내리쬐면서 더 많은 콜로라도인들이 식당 예약을 하고 외식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민이 가장 크게 기념하고, 마더스 데이를 기념해 타주로 여행을 하고, 외식 및 나들이를 통해 가족과의 시간을 즐기는 마더스 데이는 언제부터 생겼고 어떻게 미국민의 마음속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에서 교사로 일하던 애너 자비스라는 효녀가 있었다. 1902년 갑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와 어머니는 친척들이 있는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갔다. 3년 후인 5월 9일 그녀의 어머니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그 어떤 기준으로 보건 효녀였음에도 그녀는 어머니에게 효도롤 다 하지 못했다며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다. 그리고 1907년 어머니 제삿날인 두 번째 일요일,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 전국적으로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녀는 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후에 백화점 재벌 존 워너메이커의 재정적 후원 약속까지 얻어냈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1908년 5월 10일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에서 약 4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첫 번째 어머니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카네이션 꽃을 참석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제 오늘 날 미국 어머니의 날의 상징이자 한국에서도 어버이의 날(5월 8일 토요일)의 상징인 카네이션은 고대 그리스의 대관식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시 관은 화환이었던 바, 이때 가장 많이 쓰인 꽃들 중 하나가 카네이션이었다.
미 연방 하원은 어머니의 날을 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는 “어머니의 날을 만들면 아버지의 날, 장모의 날, 장인의 날, 삼촌의 날 등도 만들어야 할 게 아니냐”는 이유로 부결되었다. 자비스는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보내는 여론투쟁을 전개했으며,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끝에 결국 상원도 어머니의 날을 통과시켰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어머니의 날에 팔리는 꽃다발만 1,000만 개, 축하카드가 1억 5,000만 장에 이르렀고, 어머니의 날은 미국 가정의 3분의 1이 그 날 외식을 하는 바람에 1년 중 레스토랑에 가장 손님이 많이 몰리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어머니의 날을 만든 자비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외롭고 가난하게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어머니의 날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지만 여론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날은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는데, 한국에서는 1955년 8월 30일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이 ‘어머니의 날’로 제정되었다. 한국에서는 전쟁으로 고아와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이 생겼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기르고 먹여 살리는 일을 여성들이 도맡아야 했고 한국의 ‘어머니 날’은 그런 어머니의 책임과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다. 추후 1973년에 대한민국의 어머니 날은 ‘어버이 날’로 제정되었다.
한편 현재 덴버시에서 성황리에 진행중이거나 준비중인 마더스 데이 관련 식당 프로모션들과 행사들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https://www.denver.org/things-to-do/spring-summer/mothers-day/ 를 방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