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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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체벌 점차 사라지는 미국, 한국에 주는 시사점

김재현 논설위원 = 2012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선 여고생이 체벌을 자청하는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과제물을 보여준 사실이 드러나 이틀간 정학 처분을 받자 학점 하락으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 봐 교사에게 매를 맞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학생은 학교로 불려 온 엄마와 입회한 경찰 앞에서 남자 교감에게 곤장으로 엉덩이를 수차례 맞았다. 사달이 난 것은 그 뒤였다. 학부모가 딸의 엉덩이에 피멍이 들자 ‘여학생 태형은 여교사가 담당한다’는 안전 수칙을 어겼다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체벌에 남교사, 여교사 따지는 ‘젠더 차별’이 문제라며 교칙 개정에 나서 논란이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격언이 우리에겐 흘러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정작 인권 대국이라는 미국에선 교사가 성역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조지아주 일부 공립학교에선 학생이 자신의 인솔 교사를 앞질러 지나치는 등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침묵의 형벌’을 받는다. 점심시간에 급우들과 떨어져서 ‘혼밥’을 해야 하고 주변 학생에 말을 걸어서도 해서도 안 된다. 학생이 교사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은 감옥행을 각오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월 플로리다주에선 고교생이 수업 중 자신의 게임기를 압수한 보조 교사를 밀쳐 넘어뜨렸다가 중범죄로 기소됐다. 문제의 학생이 교실 복도에서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되는 영상도 SNS에 퍼졌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77년 제임스 잉그레이엄이 제기한 ‘공립학교에서의 교사 체벌’ 위헌 소송에서 합헌 판결을 내린 뒤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잉그레이엄이 중학생 시절 학교 강당에서 뛰지 말라는 교사의 지시를 어겼다가 교장에게 불려가 20여차례 곤장을 맞은 사건이었다. 지금도 미국은 보수성향이 강한 남부를 중심으로 17개 주에서 체벌이 허용되고 있다. 사립학교의 경우 뉴저지와 아이오와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체벌을 포함한 교사의 훈육권이 폭넓게 보장돼 있다. 한편으론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체벌이 갈수록 줄고 있긴 하다. 지난해 연방 교육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초·중등 공립학교에서 체벌을 경험한 학생 수가 2003년 30만명에서 2012년 17만명,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8년 6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행 학생의 교내 격리 및 중징계 처분, 교사 피해배상 등 학교와 교사 측이 체벌보다 더 효과적인 제재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신규 교사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 개정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조례의 일부 조항이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사의 훈육권 강화로 교권 침해를 방지한다는 발상이지만,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충하는 개념이냐는 주장부터 의견이 벌써 분분하다. 교사가 학생에게 맞아도 어디 하소연도 못 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 논의 방향이 교사의 무절제한 물리력 행사로 이어져선 안 될 일이다. 학생의 폭력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교사와 동료 학생, 어른을 대상으로 죄를 범해도 ‘나이가 어려서’, ‘학생이라 철이 없어서’,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는 갖가지 이유로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기 때문에 폭력의 악순환이 빚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당정이 26일 협의를 갖고 교권보호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사례도 눈여겨보며 교권과 학생 인권을 좀 더 조화롭게 보장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았으면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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