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지난 5일 오전 기준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위스콘신과 미시간 등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역전승하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신설해 조기에 당선 후를 미리 대비했다. 조 바이든 미국 46대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현재도 외국 정상들과 잇따라 통화하며 대선 승리 축하를 받고 있으며 후보 시절부터 당선 시 동맹과 통화할 때 가장 먼저 하겠다고 밝혀온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선인은 10일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관련하여 “트럼프 떼쓰기 솔직히 당황스럽다”는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며 “정권 교체는 결국 이뤄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선 불복 관련 소송을 이끄는 핵심 참모 및 최측근들이 줄줄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포스트 대선 전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도 “대선은 공정했고 결과는 분명하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공화당,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소속이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재검표를 요구하고 법적 소송을 추진할 권리가 있다”며 트럼프의 재검표와 소송 자체는 옹호했다. 한편 뉴욕타임즈(NYT)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경제(35%)였다. 인종차별 해소(20%), 코로나19 대응(17%), 범죄 대책(11%)보다도 경제가 앞섰다.
▪ ‘트럼피즘’ 뒤집을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ABT(Anything But Trump)’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며 많은 이들이 분열된 미국을 목격했을 것이다. 인종차별 문제, 코로나19 대책, 사회보장 등을 중시한 유권자들은 대부분 바이든에게 투표했고, 경제와 치안을 중시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투표하면서 더욱 치열한 접전의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게 될 정책들은 결국 ‘트럼피즘’을 뒤집을 ‘ABT(트럼프와 반대로 하기)’ 양상을 띄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오히려 미국의 고립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기조 가운데 가장 먼저 폐기할 대상 중 하나로 미국 우선주의를 꼽았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약화시킨 전통적 국제동맹관계를 회복하고 글로벌 현안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한 주도권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세계보건기구(WHO) 재가입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정책 1순위로 두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과 관련하여 전국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마스크 사용을 거부하거나 마스크를 쓴 사람을 조롱했던 트럼프 대통령과는 정반대 행보다. 또한 바이든은 취임 후 코로나 백신 제조 및 배포를 위한 설비에 250억 달러 투자와 검사 확대에 나설 것임을 미리 발표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대해서도 내년 1월 20일 취임식 직후 재가입 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인구 10만 명 이상의 모든 도시에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청정 대중교통 제공, 대규모 투자 계획 등을 밝혔다.
▪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콜로라도는 비교적 조용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차기 행정부로의 인수인계와 관련해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로 순조로운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심복이자 외교수장인 국무장관도 대선 불복에 동조하는 듯한 공개 발언을 한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의 지지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선거를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며 시위와 폭력 사태들을 주동하고 있다.
덴버에서는 시위대가 주 의사당과 경찰서 앞으로 모여 불꽃놀이용 화약을 던졌으며, 경찰은 최루가스와 페퍼 스프레이로 대응했다. 하지만 콜로라도는 타주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편이며 다운타운에 위치한 많은 상점들 및 건물들이 1층 유리창에 가림막을 설치하는 등 혹시 모를 폭동에 대비해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5번가를 따라 행진했고, 수개월 간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일어나 온 포틀랜드에서는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주방위군이 배치되기도 했다. 미 곳곳의 도시들에서 경찰들이 시위현장에서 다수의 총기를 압수했다며 “아무도 총기를 소지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밖에 로스앤젤레스, 샌디애고, 휴스턴, 피츠버그 등에서도 시위가 벌어져 미국 사회가 깊은 시름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 대선 불복 이어 인사 보복 시작되나? 트럼프, 국방장관 해임
차기 대통령 취임식은 2021년 1월 20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도 그 때 끝난다. 임기만료를 앞둔 공직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인 ‘레임덕(Lame Duck)’ 상황에 접어든 시기에 트럼프가 인사권을 행사, 남은 기간 현직 대통령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휘두를 가능성은 다분하다.
예를 들어 그는 대선 패배가 기정사실화 된 이후 이틀만에 자신에게 ‘눈엣가시’였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트위터로 전격 해임했다. 외교안보의 핵심인 국방장관 인사가 정권 교체기에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백악관을 떠나는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취임까지 국가안보를 위해 국방장관을 자리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에 이어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평소 트럼프 대통령과 불협화음이 잦았던 인사들의 경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정치권에서도 쏟아지고 있다. 이미 지난 6일 보니 글릭 국제개발처 부처장도 전격 해임되면서 ‘비충성파’와 ‘눈엣가시’들에 대한 트럼프발 숙청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막판 내부 혼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안정적인 정권교체를 추구해야 하는 시점에서 트럼프가 외교안보의 핵심 인사들을 내쫓으며 정부 부처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방 분야 리더쉽이 취약해진 상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방장관 경질이라는 강수를 두며 또 한 번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행정부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틈타 이란 등 미국과 적대관계인 국가들이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