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s to do’ 를 검색하며 주말마다 지역 축제를 많이 다녔다. 지역축제란 흔하면서도, 흔함을 따라잡지 못해 첫 회에 실패하기 일쑤다. 실망스러웠던 축제들은 1회를 끝으로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올해 콜로라도 한인 축제는 2회를 맞았다. 전보다 더욱 풍성한 모습으로 콜로라도 주민들을 또다시 초대했다.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이 제법 많았다.
이번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화합의 비빔밥 나눠먹기였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보기까지는 흔한 한국 축제 레퍼토리인 줄로만 알았다. 스크린에서 보면 비빔밥이 그렇게 재미있을까 싶은데, 실제로 보면 정말 재미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들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다문화적 다양성과 한국 전통문화 보존의 의의‘ 같은 딱딱한 담론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한 입 먹고 싶은 진심을 담아, 이 순간 나란히 한 줄로 서서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음식을 다 같이 나눠먹는 재미란 그렇다. 음식에는 특별한 정과 힘이 있다.
전통 문화 공연이 이어지던 무대 중앙에서 화합의 비빔밥이 시작되기 직전, 갑자기 거대한 비빔밥 통이 놓이고, 무대에 없던 의자들이 죽 놓였다.
대단한 사람들, 소위 ‘빅 샷(big shot)’ 들이 온다는 뜻 같았다. 그들이 왔지만, 소개를 들어도 낯설기만 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심코 “시장이 왔다는데 누구인가요?” 묻자 흑인인 그는 씩 웃으며 “저기 흑인 남자”라고 대답했다.
“흑인 남자” 라니! 흑인이 아닌 나는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차마 할 수 없는 그 말을, 그는 그들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말한다. 순간 그의 눈에 마이너리티로서의 자부심과, 암묵적 “알면서” 하는 장난기가 비친다. 반드시 한국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한인 축제를 통해 우리는 의외의 통함을 발견한다.
이름모를 빅샷들 뒤에 또 빅샷이 있었다. 연방 상원 존 히킨루퍼였다. 그는 예미 모볼라데 시장의 초대를 받아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방문했던 것도 같지만, 한인 축제의 규모와 그곳을 채운 구성원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히킨루퍼를 포함해 이내 그곳에 있던 여러 지역 인사들은 자신이 얼마나 김치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한국과 특별한 연이 있는지 앞다투어 열변을 토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일상처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메리카 더 뷰티풀 공원에 펼쳐진 한인 사회의 어우러진 성과는 그들의 눈에도 의미가 컸다.
콜로라도 한인 축제를 채운 사람들은 친근한 콜로라도 이웃들과 주민들이었다. ‘아시안과 아시안 컬쳐를 좋아하는 사람들’ 을 떠올릴 때 으레 따라오는 사회적 비주류의 통념에서 벗어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원을 가득 메우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건너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방문객들이 특별히 한 자리에 모였을 수도 있지만, 이번 한인 축제는 현지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음이 분명했다. 다들 평소처럼 ’주말엔 무엇‘을 검색하고, 그룹 채팅에서 누군가 올렸던 축제 포스터를 확인하고, 한숨처럼 내뱉은 뭐 하지? 를 몰래 듣고 딱 알맞게 뜬 알고리즘 덕에 모두가 한 날에 몰려온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그들은 정말로 즐거워했다.
흥겨운 케이팝 비트에 고개를 끄떡거리다가, 사물놀이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흰 천에 몸을 맡겨 단아하게 춤추는 한국 전통무용과 한복의 오묘한 색감에 잠시 홀렸다가, 한 김치 부스에서 코스트코와 대형마트에 경쟁하듯 입점하기 시작한 대기업 김치맛을 떠올렸다.
비빔밥 한 입 얻어먹은 김에 푸드 부스에서 파는 닭강정과 LA갈비를 사이좋게 사 먹고, 말랑이와 왁뿌(왁스 뿌시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하나 쥐어준 뒤, 차에 타고 돌아오는 길엔 신나는 음악과 북적거리는 현장의 자극에 지쳐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잠시 조용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서는 리클라이너에 앉아 “꽤 생산적인 하루였어” 를 중얼거리며 알고리즘 밈 틈에서 중간중간 뜨는 오늘의 축제 현장을 스치듯 스크롤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을 무렵 기사를 작성하던 중, 신문사 데스크가 제보를 전송했다. 익명의 메일로 발송된 장문의 AI 문서였다.
‘꼰대’ 같은 자극적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구조개혁 비교분석’ 같은 근엄한 도표 사이로, 느닷없이 영어 소괄호와 함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같은 것이 등장하기도 하는 모호한 문서였다. 잊힐 만 하면 나타나는 AI 특유의 유식한 용어들과 여지없이 붙는 소괄호 속 영문 번역은 입가에 웃음을 자아냈다. ‘그날이 정말 잔칫날이었구나’ 를 실감하게 했다.
먹고 마시며 저마다 품평회를 하기는 소문난 잔칫집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어르신으로 짐작되는 제보자의 뜻을 감히 이해해 본다면, 비록 거친 언어일지라도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인 축제의 이상향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싶었다고 짐작한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처럼, 누군가의 반응과 피드백을 끌어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번 콜로라도 한인축제는 각계각층의 피드백을 받는 데 성공했다. 미국인들이 스스로 한국 문화를 찾고, 한인들과 관계를 쌓아갈 기회와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소소하면서도 왁자지껄한 축제 방문의 하루를 빚어내는 데 얼마나 많은 현지 네트워킹과 내부 단합과 리더십의 기획력이 요구되는지 이제는 안다. 이 나라에서 평범하게 살기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는 이민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장의 말처럼, 겨우 1만여 명으로 구성된 스프링스의 적은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콜로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운 하루를 선물한 것은 모두가 함께 축하할 일이다. 다음 해 더 뜨거울 한인축제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