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오피니언나뭇잎 사이로그립고 아리운 이들

그립고 아리운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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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눈을 감으시고 제가 말씀 드리는데로 그림을 그려 보세요. 저는 지금 Newark 공항에서 덴버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카페 옆에 난 큰 창문 가에 앉아 따스한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적당히 넣은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문 닫을 줄 알았던 Sony 가 기특하게 잘 만든 검은 색 헤드폰은 신경을 건드는 주변의 소리로부터 저의 귀를 도톰한 두 손으로 덮어 줍니다. 눈을 드니 이제 곧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둥실 떠오를 비행기들이 덩치 큰 거위들 처럼 느릿하게 줄지어 걸어갑니다. 제가 곧 타고 갈 비행기는 마치 자그마한 포머레니안 강아지가 주인에게 간식 하나 얻어 먹어 보려고 검은 두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얌전히 앞 발을 모아 엎드려 있듯이 제 앞에 가만히 있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평일 오후의 평화로운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승객들을 비행기에 연결시켜 주는 Jet bridge 가 비행기로 다가가 캐노피를 내려 단단히 붙습니다. 간식을 담은 차들, 승객들의 가방을 가득 담은 카트가 꾸역 꾸역 물건들을 채워 넣을 때, 제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직원의 성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안내방송이 귀를 파고들자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이전에 덴버 공항에서 일할 때 그 바쁘고 긴장되던 순간들이 만들어낸 기분, 느낌, 감정 등이 없는 듯 잘도 숨어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지니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 탑승교가 부딪힐까 조마조마 했던 것, 비행기가 늦은 밤 갑자기 취소되며 수 많은 승객들이 화가 난 채 줄을 서 있다 제 뜻대로 안되자 애꿎은 동료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던 진상 승객, 낮은 임금에도 비행기가 있는 추운 콘크리트 위에서 묵묵히 일할 수 밖에 없던 이들의 어두운 얼굴… 그 항공사를 그만둔지 8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제 안에 남아 있던 기억들이 앞서 있었던 평화로운 공항의 그림을 갈아 엎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았습니다. 숨어 있던 트라우마*는 언제든지 튀어나와 현실에 서 있는 내가 다른 이들과 모험 가득한 여행을 떠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들어가게 만들거나 그나마 가지고 있던 관계들 마저 파괴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트라우마의 영향력 가운데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 까지 뉴저지에 있는 우리교단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의 한인총회 사무실에서 12명의 목사님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목적은 4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하기 위해 각 지역의 대표들이 모여 미리 안건을 정리하여 각 교회들이 더욱 든든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월요일에는 미국 전역에서 모인 목사님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오전에 회의가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K 목사님의 똑똑하고 논리 정연한 발언은 감독님께서 가지고 오신 안건을 반대하는 것 처럼 느껴졌고, 점심 시간이 되어 밥을 먹을 때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성품 좋은 L 목사님께서 웃으며 “이야기 좀 하면서 식사 좀 하시지요~” 라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는 이가 없이 도시락이 맛 있다는 영혼 없는 대화가 한 두번 오가다 그나마도 그치고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총회에서 회의하다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어려워졌던 트라우마가 누구나 있는 목사님들의 마음이 지금 힘든 것입니다.

그러다 눈치 없이 제가 K 목사님에게, “목사님 성함이 멋있고 특이하신데 누가 지어주셨나요?” 물으니, 아버님이 목회자셨다, 어디 성씨에 무슨 파다, 조선 시대 성씨의 유래까지 해서 줄줄이 나오니, 다른 목사님들이 한 두 마디 거들면서 어색함은 도망가고 농담과 웃음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다음 오후 회의는 감독님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총회에 속한 교회들과 목사님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너무나 두드러져 이견이 있어도 마음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그 다음 날 다시 아침과 점심을 먹은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 헤어질 때가 되니 처음 만난 이들도, 오랜 만에 만난 이들도 식당 주차장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포옹하고 인사하고 또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잘 가라, 다시 보자 합니다. 교회로 돌아가 다시 영적 전투 속에서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 어떻게 외로운 싸움을 싸우게 될지 그 외로움이 보이기에 그러는 것만 같습니다.

공항에 들어와 큰 창문이 있는 카페에 앉아 있으니 이미 여러 많은 메시지가 단체 카톡방에 올라와 있습니다. 헤어진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움과 아련한 마음이 제 앞에 펼쳐졌던 항공사의 트라우마, 오래 전 여러 회의에서 있었던 실망과 좌절을 딛고 그 위에 우뚝 섭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 그들이 그립고 아리움니다.

이제 눈을 떠보세요. 누가 보이시나요? Alliance, 예수님의 동맹군들이 보입니다.

이성한 목사 woo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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