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난 주에 이어집니다) 오늘 아침은 주님께서 죄에 대한 심각성을 내 영혼 속에 휘몰아 놓으셨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순수한 영혼이 부럽기도 하다. 성경책과 주변 서적을 펼쳐 놓고 죄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 고찰과 내 영혼의 죄성을 탐구해 본다. 구약과 신약에 사용된 죄에 대한 용어를 바로 알고, 바로 적용해야 한다. 죄와 너무나 쉽게 타협하고 있다. 또한 죄에 대한 지적이 없다. 죄에 대한 애통은 살라져 가고 있다. 죄가 왕 노릇하는 시대가 되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죄의 종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 각성과 회개가 요청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죄 지적이 없는 신학, 죄 설교가 없는 교회 강단, 죄 애통이 없는 개인의 영혼은 사탄의 밥이 되고 지옥으로 치닺고 있다, 죄의 목욕탕 속에서 죽을 줄 모르는 개구리처럼 하나님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면서 죄의 낙을 누리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나타난 죄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용례 속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지었고 혹여나 짓고 있는 죄의 진면목을 파악하길 바라며, 하나님, 사람, 물질, 자연 등에서 범죄한 자신의 죄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진단해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참으로 죄의 간악성과 간교성, 잔인성과 추악함을 더 깊이 깨우침을 받기를 소망한다. 죄에 대한 구약의 용례와 신약의 용례를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주에 이에 계속됩니다)
7) “레샤”-“악하게 행동하다”, “죄책을 초래하다”는 뜻이다.
명사형 “라샤”는 “악함”이란 뜻이다. 그 예로 에스겔 3: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8) “쉐케르”-명사형으로 “허위”, “거짓말”, “속임”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 예로 시편 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예레미야 27: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
호세아 7: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9) “마알”-명사형으로 신뢰에 대한 배반의 뜻으로 “불충성”, “배반” 등으로 번역.
특히, NIV에서는 번역되어 있다, 그 예로, 레위기 26:40,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역대 상 9:1,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에스겔 18:24,“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10) “아벨”과 “아브라”-“아벨”은 남성 명사, “아브라”는 여성 명사로 그 뜻은 “벗어남.”
“아벨”은 남성 명사, “아브라”는 여성 명사로 그 뜻은 “벗어나다” 동사형에서 유래 되었다. 그 뜻은 “옳은 것에 반하는 행위나 행동”을 의미한다. 말씀과 진리, 표준과 원리에서 벗어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다. 남성 명사형으로 사용된 그 예로, 신명기 32: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여성 명사형으로 사용된 예로, 시편 92: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하박국 2:12,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1) “솨가”, “솨가그”-“잘못하다”, “길을 잃다”는 뜻이다.
고의가 아니지만 속죄를 필요한 죄를 가리킨다. 그 예로, 레위기 4:1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민수기 15:28, “ 제사장은 그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이 부지중에 여호와 앞에 범한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12) “마드라”와 “마라”-“거역한다”는 동사형이고 명사형으로 “메리”가 있다.
그 뜻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하여 거역하고 반역하는 죄를 의미한다. 그 예로, 이사야 36: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 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민수기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신명기 31: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12) “아삼”-명사형으로 “아쉬마”가 그뜻은 “벌 받을 죄가 있다”는 뜻이다.
그 뜻은 “벌 받다”로 죄책과 죄 형벌을 가져오는 범죄 행위를 일컫는다, 보통, 죄와 죄책으로 번역되었다. 그 예로, 시 34:21-22,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호세아 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스가랴 9: 6-7,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상과 같이 구약에서 죄에 대한 용례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류 조상인 아담의 죄가 구약에 걸쳐 전반적으로 흘러 내려간다. 죄의 보편성, 죄의 전가성을 알 수 있다.
구약은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개인, 가정, 사회 및 국가에 형벌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다양성도 역사현장과 삶의 현장에 가뭄, 전염병, 전쟁패배, 이방 땅에로 추방과 종살이의 역사적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절감케 한다. 결국 죄의 삯은 사명이요 회개의 길만이 살길이요, 불신, 불의, 불순종은 멸망의 길임을 다시 한번 경종을 우려주시고 깨우쳐 주신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죄에 대한 심판의 역사적 사건을 오늘의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하겠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필요성과 죄 용서의 은총의 복음을 감격하고, 구원받은 이 후위 거룩에로의 삶, 성화와 성숙의 걸림돌이요, 원수인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히 12:4)는 히브리서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바울 사도의 간절한 부탁인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죽이는 삶(골3:5) 살아야 한다. 실패자의 삶을 경험한 베드로의 가슴 치는 권면인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라(벧전 4:2) 말씀을 육에 아닌 깊이 심령에 새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