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26, 2022

곁불 쬐는 재미

한국에서는 보기 귀했었던 참새들을 여기선 종종 볼 수 있다. 작고 귀엽게 생긴 참새. 참으로 새스럽게 생긴 것이 새스럽게 날아다녀서 참새란 이름이 붙여진 걸까? 참새, 참게, 참나물, 참마음, 참사람. 먹기도 좋을 듯하고 믿어도 될 듯싶다.


어린 시절 한옥 집 마당에는 참새들이 수시로 날아와 앉아 뭔가를 쪼아 먹곤 했었다. 오빠는 참새를 한번 잡아보겠다고 마당 한가운데에 끈을 매달은 작대기에 소쿠리를 받혀 비스듬히 세워놓고 쌀알을 뿌려놓고 줄 끄트머리를 잡고 툇마루에 앉아 미동도 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참새 두어 마리가 마당에 내려앉아 쌀알들을 쪼아 먹다가 소쿠리 밑으로 들어갔다. 바로 끈을 잡아당겼으나 소쿠리가 닫히기 전에 참새가 잽싸게 날아가 버려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었다.

참새를 보면 저절로 시골 작은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세 동생들은 진즉에 모두 서울로 올라와 자리 잡고 살았으나 둘째 작은아버지는 고향 충청도에서 농사짓고 방앗간을 하며 살고 계셨다. 여름방학이 오면 우리 남매들은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시골 작은 아버지네 집으로 방학 여행을 갔다. 방학 때마다 내려오는 큰집 애들이 반가울 리가 없었겠지만 귀찮은 내색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명절이나 친척들 경조사, 혹은 서울의 큰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큰 집에 몰려와 안방과 건넌방을 점령하고 몇 날 며칠씩 신세를 져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촌 남매들과 들판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목이 마르면 밭에서 잘 익은 수박과 참외를 따가지고 원두막에 올라가 깨뜨려 먹었고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려도 원두막으로 피해 올라갔다. 원두막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 남매들과 사촌 남매들의 어린 얼굴들, 그리고 수박밭에 쏟아져 내리던 비와 빗소리가 지금도 눈과 귀에 선히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완전히 깜깜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모두 같이 냇가에 나가 차가운 시냇물에 목욕했는데 그럴 때면 전날 밤에 사촌들한테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냇가에 나뭇가지를 드리운 커다란 능수버들은 지난 겨울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처녀를 떠올리게 하여 빨리 씻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생각이 난다. 밤에 대청마루에 있는 테레비 앞에 모여 앉아 보았던 전설의 고향 ‘삵쾡이 발’ 편도 기억난다. 옛날 생각이 날 때면 가끔씩 전설의 고향을 뒤져서 보기도 했는데 전혀 무섭지 않고 외려 순수하고 정감이 있다.


어느 날 밤인가 작은아버지께서 참새를 구웠다면서 자는 우리들을 깨웠다. 작은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접시 위에는 짧은 다리와 몸통과 머리까지 까맣게 그슬려진 참새 사체가 열 마리 정도 올려져 있었다. 잡기 어려운 참새를 공기총을 쏴서 간신히 잡았다며 어서 먹어 보라고 채근하셨지만 차마 먹을 수가 없어 바라다보기만 했다. 작은아버지께서 먹는 시범을 우리들 앞에서 먼저 보이셨다. 짧은 참새 다리를 손잡이 삼아 집어 들고 참새의 머리부터 씹으셨다. 에구구, 눈깔 터져 뿌렸다, 워쪄어…. 하시면서 쩝쩝쩝. 보고 있던 우리는 우웩! 서울에서 내려온 조카들한테 맨날 밥에 김치만 먹이는 맘이 거식하여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으나 작은엄마 눈치가 보여 그러지도 못하니 참새라도 구워 먹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사격 실력도 좋아야 하는 데다가 공기총은 쏠 때마다 매번 씽풍씽풍 공기를 넣어 줘야 했는데 그러는 동안 참새는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이래저래 쉬운 노릇이 아니라 나중엔 낱 알갱이에 농약을 섞어 뿌려놓았다가 참새가 그것을 먹고 널브러지면 사체를 주워 배를 갈라 깨끗이 내장을 빼내고 구워 먹는 방법을 써서 결국엔 참새 씨가 말라 버렸다고 한다.


겨울 방학의 시골 추억도 좋다. 밥때가 되어 작은어머니가 아궁이에 짚으로 불을 때시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불구경하며 아궁이 불을 쬐던 기억이 난다. 일찍 어두워지는 겨울날엔 저녁을 먹고 나면 할 일이 없어 심심했다. 그래서 깜깜해도 고갯길 너머에 있는 외갓집에 길을 나섰다. 언니와 둘이 붙어 걸으며 나무에 목을 매달에 죽은 사람의 귀신이라도 보일 새라 땅만 보고 걸었다. 낮에는 가까웠던 그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외할머니의 동생인 외삼촌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면 당시 처녀, 총각들이었던 당숙들은 쌀자루가 켜켜이 쌓인 사랑방에 우리를 앉혀놓고 부엌 아궁이에 남아있는 불을 화로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화롯불 속에 고구마를 박아 넣고 양철 쓰레받기에 땅콩을 구워 먹었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어 그런지 지금도 아궁이가 있는 부엌에서 몇 날 며칠 불을 때보고 싶고 남은 불을 화로에 담아 들고 들어가 땅콩을 구워 먹으며 화롯불을 쬐어보고 싶다.


가을로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니 곁불쬐던 재미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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