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5일, 남북공동선언이 20주년 되던 날, ‘끝장을 볼 때까지 한국에 서릿발 치는 보복을 하겠다’는 북한의 선언이 있었다. 굳이 이 날이었던 까닭은 가장 극적인 효과를 위한 계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고 통일의 희망을 가져다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정권의 뚝심 있는 대북 정책이 이뤄낸 보람 있는 결실이었고, 남북관계의 터닝포인트(전환점)로서 그 의미가 크다. 지금의 현 정권도 6.15 정신을 계승하여 같은 맥락의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노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으나 같은 듯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햇볕정책의 성공은 안보와 경제가 그 기초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북한의 군사력은 핵 보유국임을 자처하는 지금의 그것에 비해 한참이나 초라했으며 한미동맹을 포함한 안보상황은 크게 흔들림이 없었고, 2년만에 외환위기 속 IMF 관리 체재를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저력 위에서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가진 채 꾸준히 밀어부친 결과 얻어낸 열매였기에 20년이 지난 지금 긍정적인 역사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수년간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실험을 지켜보는 동안 한국정부는 일관되게 북한에 대하여 지나치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해 오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국제적 존재감 향상에 일조를 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물론 한결같은 정책기조를 보여온 결과로 판문점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성과를 보이는 듯 했으나 지금의 남북관계를 냉정히 평가하자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철저하게 뒤통수 맞고 낙제점을 받은 성적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1억도 채 안 되는 예산(8천6백만원)을 승인 받고서 대북제재위반이라는 국내외적 비판을 무릎 써 가며 신축공사도 아닌 재 개소에 100억 가까이 들여 벌여 놓은 남북 연락 사무소는 북한이 폭파를 공언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완벽한 정책도 완벽한 정치도 없다. 그렇기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필터는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 날 선 비판을 충분히 수용하고 수없이 조정하며 헤쳐나갈 때 비로소 대의 정치가 작동 할 수 있는 법이다. 남북관계에 관한 다분히 결과론적인 비판의 이야기로 시작을 했으나 이는 정치, 외교, 경제 등 다방면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수위에 닿은 현 정권의 일방통행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일 뿐이다.
국회는 제동장치 없이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되어버렸다. 민주화 이후 최초라는 기록을 거의 매주 양산해 내고 있다. 야당이 총선 참패 이후 존재감 없이 주저 앉아 구심점을 잃고 있는 동안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황들이 속속 연출 되고 있다. 단독 개원 강행, 상임위장 독식 등의 사태는 전두환 정권 즈음에서 우리가 등 돌린 후진정치의 전형이다. 더욱 충격을 주는 것은 지금의 여당 핵심 지도부들이 과거의 그런 구태 정권에 맞서 온 몸 던져 저항하여 값진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야당이 제 구실을 못하면 여당 내에서라도 균형을 위한 노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보인다. 민주당 금태섭 전의원은 공수법 처리 법안 투표 당시 이른바 강제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 표를 던졌다. 그 후 폭풍으로 공천에 제동이 걸리더니 급기야 당으로부터 경고처분의 징계를 받기에 이르른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독립된 헌법기관이라고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 되어 있다. 물론 사안에 따라 당론이라는 게 있고 소속된 의원들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각 의원이 본 회의장에서 소신에 따라 투표를 하는 행위에 대하여 징계조치를 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행위이다. 1980년대 서슬 퍼렇던 민정당에서나 일어나던 일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대기업의 자국 회기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 올랐다. 수출,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 강하게 불고 있는 바람이다.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해외 생산라인에 투자하던 기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시큰둥한 나라가 한국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국은 참 돌아가기 힘든 매력 없는 고향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나 강성노조의 습관적 파업 등은 차치 하더라도 반 재벌 정서가 변형되어 자리잡은 반 기업 정서는 눈에 보이진 않는 높디 높은 장애물인데다가, 대기업은 때리면서 중소기업은 못 살리는 경제정책의 연속된 실패에도 도무지 유연한 방향전환이 보이질 않는다.
진보의 가치와 보수의 가치 중 어느 것이 더 맞고 어느 것이 더 틀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 시대를 반영하고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치권과 정부의 책무이며 그를 위해서는 정치인 각자, 혹은 특정 정당의 일방적 신념보다 더 높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