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북유럽이나 ‘알래스카’하면 경이로운 빙하와 자연 경관을 떠올린다. 그 중 ‘개썰매’는 꽤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유명한 듯 하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봐도 수많은 개썰매 후기와 스릴 넘치는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곳 콜로라도도 겨울이 길고 눈이 내리는 곳이라 그런지 개썰매 투어가 유명하다. 브레켄릿지, 듀랑고, 윈터파크, 파고사 스프링스 등의 겨울산이 유명한 지역에 대략 15곳이 현재 운영중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도 한 번 쯤은 설원 위에서 펼쳐 보는 인간과 동물의 특별한 경험을 하고픈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 아이들 방학 기간에 개썰매를 테마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던 즈음 어느 날, 신문사로 동물 학대가 이루어지는 개썰매 현장에 대한 기사제보가 날아왔다.
기사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콜로라도 개썰매 투어 관련업체들이 썰매견들을 학대, 살해해 동물학대로 여러번 기소되었으며, 심지어 미국으로 입양된 진돗개로 보이는 개가 학대당하는 정황도 포착되었다고 한다. 제보된 기사를 읽고 난 후, 개썰매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개썰매를 단순히 ‘익스트림 스포츠’로만 여겼던 안일한 생각은 인간과 개의 관점에서 좀 더 깊이 있게 고찰하게 되었고,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닌 공생의 관계로 충분히 고려해 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계획하던 개썰매 투어를 미뤄두고 어떻게 개썰매가 시작되었는지, 현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썰매견들의 동물 학대는 어떻게 행해졌는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자료를 조사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사람마다 생각과 관점이 달라 지극히 주관적인 글일 수 있으므로 읽는 이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길 바란다.
개썰매는 자동차산업이 발달하기 이전, 북미와 유럽의 극한지방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운송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디프테리아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이 지역에 발생하였다. 이 때 정의로운 20명의 머셔(mushers.썰매운전자)와 170마리의 썰매견들이 127시간 동안 674마일(1,085km)을 달려 전염병을 방지할 혈청을 운반했다. 목숨을 담보로 자원한 이들은 섭씨 영하 47도, 체감온도 영하 57도의 혹독한 날씨 속에서 맹렬한 눈보라를 뚫고 북극의 설원을 이어달리기 식으로 헤쳐 나갔다. 그들은 25일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5일 8시간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으로 주파하여 3만 개의 약품을 놈(Nome)까지 운반해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최후의 위대한 레이스’란 부제가 붙은 아이디타로드 트레일(Iditarod Trail)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머셔들과 썰매견들을 기념하는 지역축제이자 전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달리는 운명을 타고난 썰매견들은 대부분 늑대와 교배종으로 알래스카 허스키 또는 시베리안 허스키라고 불린다. 그 외에도 말라뮤트, 하운드, 세터, 스패니얼, 저먼 셰퍼드등이 썰매견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썰매견들은 이 혹독한 경주에서 승리를 위해 빠른 속도, 강인한 발, 지구력, 좋은 태도, 가장 중요한 달리기 욕구를 강화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그 중 힘과 체력이 가장 좋은 썰매견이 맨 앞줄에서 리더를 맡았다.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시작된 아이디타로드 트레일(Iditarod Trail) 개썰매 경주는 1973년 시작되어 올해로 벌써 50주년을 맞이하는 지역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3월 초에 경기가 열리며, 혈청 운반로였던 알래스카주 앵커리지(Anchorage)에서 알래스카주 놈(Nome)까지 1,100마일(1,790km)이 넘는 거리를 달린다. 머셔는 12-16마리의 썰매견을 이끌고 정해진 코스를 따라 통상적으로 8~15일 걸리는 거리를 완주해야 한다. 이들은 대장정 동안 툰드라와 설원에서 새우 잠을 자며, 눈보라와 살을 에는 체감온도 -100°F(-73°C)를 버틴다.



그러나 아무리 혹한과 불규칙한 위험성을 대비해 충분히 훈련을 받았더라도 경주 중에 최대 절반의 개들은 너무 아프거나, 다쳤거나, 지쳐서 계속 달릴 수 없기 때문에 경주를 끝내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사례만 보아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에는 경주견 Stiffy와 Wyatt가 둘 다 트레일에서 사망했고 Stuart는 썰매 줄이 풀려 차에 치여 사망했다. 2016년, Nash는 경주 중 설상차에 치여 사망했고, 2020년에도 많은 썰매견들이 구토와 동상에 걸리거나 탈진, 부상이 심해 무리에서 제외되었다. 이 대회의 주최측은 사망한 썰매견의 공식적인 집계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경주로 사망한 썰매견의 수는 비공식적인 집계로 약 150여 마리에 달한다고 동물 보호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다. 사망원인은 사고사를 제외하고 척추 부상, 흡인성 폐렴, 심장 마비, 질식, 저체온 등으로 알려져 있다.
대회 주최측은 “썰매견들은 외부의 물리나 강압에 의하지 않고 본능으로 달린다. 그러나 경주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속도가 느려진 개들을 쉼터에 남겨두고 대회를 계속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남겨진 개들은 쉼터에서 돌봄을 받은 뒤 앵커리지로 공수된다. 이들은 경주전에 사전 건강 테스트를 마치고,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여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또 경주시 회복을 위해 코스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므로 큰 부상없이 경기를 마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추최측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끊이질 않았다. 동물학대에 대한 정황도 속속이 들어났다. 아이디타로드 이사회는 2007년 전 우승자였던 레미 브룩스(Ramy Brooks)가 썰매개를 학대한 혐의로 정직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고, 2019년에 완료된 2년간의 비밀 조사에 따르면 전 우승자 존 베이커(John Baker)와 동료 케서린 케이쓰(Katherine Keith)가 운영하는 개 농장에서 끔찍한 학대와 방치 정황이 포착되었다.



동물 보호가들도 개썰매는 동물학대라며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개를 학대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썰매견들이 코스를 이탈하지 않고 더 빠르게 달리도록 채찍으로 개를 때리는 일은 명백한 동물 학대이며, 사슬에 줄줄이 묶인 채 빠른 속도로 달리게 되면 줄이 엉킬 경우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으니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사육장에서 체인에 개를 묶어 놓거나, 노화되고 경쟁에 밀리는 썰매견들이 유지비 축소의 목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관행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경주에 참가하는 머셔들의 입장도 다소 회의적이다. 이 경주에 참가하는 머셔는 평균 65명이다. 2016년에는 85명이 참가했으나 2023년에는 34명만이 참가등록을 마쳤다. 이것은 사상 최저치로 1973년 레이스의 첫 시작 팀 수와 일치한다. 참가자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머셔들은 최종 썰매견들을 선출하기 위해 통상 30-50마리를 훈련한다. 이들을 사육하기 위해 주택과 개관리비, 운송비, 사료비, 수의사 비용등을 충당해야 한다. 사료의 가격도 봉지당 30달러였던 최고급 사료가 팬데믹이후 65-85달러로 인상되었고 최근 물가인상으로 인해 연간 75,000달러의 지출이 예상된다.
그러나 대회상금이 비용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2022년 경우, 레이스의 총 상금은 $500,000로 순위별로 비율을 조정해 상금을 지급했다. 1위는 약 $51,000, 2위는 약 $43,000, 3위는 약 약 $40,000… 거기에 대회 참가비용 4,000달러도 지불해야 한다. 그마저도 곧 8,000달러로 인상 예정이다. 어찌보면 사육사 입장에서는 빚을 지는게 뻔한 일이고, 우승을 하더라도 빚을 갚고 나면 남는게 없으니 대회 참가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개썰매 경주의 참가자수가 줄어들고 기존 완주자나 챔피언들이 더 이상 경주에 참가하지 않는 등 이 경기에 대한 잡음이 끊이질 않자, 2017년 웰스 파고(Wells Fargo) 은행은 더 이상의 후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여러 주요 기업이 동물 권리 국제 단체(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의 압력을 받고 레이스 후원을 철회했다. 2021년 미국의 석유 회사 엑슨 모빌(Exxon Mobil)도 행사 이후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비판적 견해와 사그러드는 관심속에서 과연 이 대회가 과거의 명성처럼 80개의 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을 구하려면 우리의 생각은 춥고 척박한 북쪽 지역에서 사람의 생존을 위해 개의 도움을 받았던 그 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수단과 기술이 없던 그 시절에 인류는 개와 유대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택했었다. 그 역사를 계승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구상의 아이템으로 개가 이용되어야 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에서 용인 할 수도 있겠다.(동물 복지에 대해 충분한 인식이 전제된 경우에만 말이다.) 만일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의해 개를 학대한 사례가 급증하고, 개썰매에 이용될 썰매견들에 대해 심사숙고한 절차와 준비의 흔적이 없다면, 이 사업은 지역전통 계승이 아닌 동물학대 수준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문득 영화 ‘토고'(Togo,2019)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람과 동물의 공생 관계를 묵직히 그려냈다. 주인공인 썰매견 ‘토고’와 머셔 ‘레너드 세팔라’는 알래스카에 전염병이 퍼져 혈청을 구하러 긴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무서움과 두려움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 앞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절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결과 도무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혈청을 구해 전염병에 걸린 아이들을 돕게 된다.
천방지축 눈에서 뛰어 놀기 좋아했던 토고는 더 나이가 들자 썰매견을 그만 두고 강아지들의 아빠개가 되어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속에 14살로 생을 마감한다. “희생”을 강요했던 인간에게 “언제나 헌신”으로 대했던 토고가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반려인과 죽을때까지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없다.인간에 대한 개의 헌신은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보살핌으로 보답되어야 함을 강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