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단층짜리 주택 내부를 약간 손을 봐서 이발소로 탈바꿈시켜 제리가 이삼십년을 지켜온 이발소로 삼년 만에 다시 돌아오니 마음이 어찌나 편한지 모른다. 거기다가 제리는 육십 삼세, 동료 이발사 리치는 오십 오세라 같이 일하는 것이 편안하고 웃긴다.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봤고 겪을 것 다 겪은 사람들이라 이해의 폭이 넓고 다 내려놓을 나이들이라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젊은 애들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삼십 대 애들 속에서 삼년이란 세월을 혼자서 어른 노릇하면서 어떻게 버텼는지 나 자신이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니까 겉은 멀쩡해도 속이 이집트 미이라처럼 고대로 말라 비틀어져 갔을 수밖에 없었겠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돈 많이 버는 것보다 적게 벌어도 맘 편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최고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맞춰서 살아지는 것이 또 우리네 삶이다. 출근길이 설레어 행복하다.
히스패닉 동료 리치는 ‘cancer surviver’이다. 암 완치자.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혈액 암에 걸려 온갖 고통스런 치료 다 받고 요단강을 건너다가 돌아와 이십년이 지나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유쾌한 히스패닉 동료 리치 덕분에 이발소에서 매일 깔깔대다가 집에 온다
사대 째 이발사집안 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제리는 이십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달랑 가위와 빗만 가지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는데 그동안 이발소 건물도 샀고 집도 샀으며 대출금도 다 갚았다.
여자 혼자서, 거기다가 불편한 몸으로. 뚱뚱하게 살이 많이 찌고 하체가 부은 듯이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유전적인 병이라고 한다. 빨리 걷거나 뛰지도 못한다. 뒤뚱거리며 걷고 움직임도 둔해 얼마나 불편할까 싶은데 그녀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지하실을 살림집으로 고치고 페인트칠하는 것도 본인 손으로 다 하고 방 문짝 옮겨 다는 것, 수도꼭지 갈아 끼우는 것도 손수 한다. 구부리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는 그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힘겨운 삶을 성공적으로 일궈온 그녀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 그런지 제리는 무척이나 독재적이었다. 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까지 통제를 하려드니 젊은 애들이 몇 달 붙어있지 못하고 떠나기 일쑤였다. 결국 참고 참았던 리치도 떠났었고 나도 떠났었다.
시간차를 두고 나보다 먼저 와서 일하다가 떠났다가 나보다 먼저 돌아온 리치와는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 같이 일하게 되었다. 말하는 것을 워낙에 좋아하는 제리는 하루 종일 거의 쉬지 않고 말을 한다.
오랜 세월동안 이 이발소를 찾아오는 여기 토박이 할아버지들 중에 과반수는 그녀 말고 다른 이발사를 찾는다. 이발하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수다를 들어주는 것은 곤욕이기 때문이다. 삼년 동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나를 손님들이 알아보고 반가워해줘 고마운 노릇이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의 반 이상은 가려져있는데도 불구하고 까만 머리의 동양여인이라 식별이 어렵지 않았나보다.
마스크로 가려져 그들의 두 눈만 보이지만 머리모양과 체격의 조합으로 나역시 그들이 알아봐진다.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와 그 기능은 그 어느 최신 컴퓨터보다 많고 탁월하다는 말이 믿어져 다시금 놀랬다. 리치는 제리가 안 나오는 날이면 제리의 말투와 행동거지를 그대로 흉내 내면서 나를 웃겨준다.
잠시 손님이 끊겨 한가할 때엔 의자에 편히 앉아 눈감고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좋다. 전에 몸담았던 이발소에는 사방 벽으로 텔레비전이 다섯 대가 달려있었는데 거기서 크게 흘러나오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어야 하는 것도 고문이었다.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대화할 때는 더 크게들 떠들어대는 통에 귓구멍을 막고 있었다. 색성향미촉법, 눈코귀혀몸뜻 우리의 오감과 생각은 잠시도 우리의 뇌를 쉬지 못하게 한다. 단 오 분이나 십 분간만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눈감고 앉아 있는 것은 쉼이다. 소음이 있더라도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눈감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쉼을 얻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려니 하라고 , 왔으니 때가 되면 갈 것이다 하고 그 상태를 누리고 즐기라고 한다. 아무리 그러려고 노력하고 다스려도 그게 안 될 때는 몸까지 따라 아프다. 몸과 마음은 하나인지라 너 따로 나 따로가 안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플 때엔 마음 하나만 아프고 몸이 아플 때엔 몸 하나만 아프자. 아픈 마음을 곱씹어 또 마음 아파하지 말것이며 몸이 아플 때엔 그 아픈 몸을 곱씹어 마음까지 따라 아프지 말자. 내가 나를 두 배로 고통 주는 것이야말로 손해 중에 손해다. 알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느냐고 한다. 놀랍고 멋진 퀀텀 띠오리, 양자역학. 보면 달라진다. 세상 모든 만물은 에너지의 파동이기 때문이다.
환갑 언저리인 우리들의 업장이고 놀이터인 시골 이발소. 리치는 뒷방 창문으로 주차장을 내다보고 있다가 평소 까다롭게 굴던 손님이 차에서 내리면 숨어서 안 나온다. 지저분하고 인상이 안 좋아도 뒷방에서 안 나온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나를 도와주려는 것이다. 까다로워봤자 여자들만큼 까다로우랴 남자들의 까다로움은 얼마든지 맞춰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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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래
-아마추어 작가
-1985 중앙대
-건축공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