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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 적폐청산 칼잡이, 정권교체 ‘별의순간’ 잡다…尹인생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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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 권위자의 장남…서울법대 졸업 후 9수만에 사시 합격
검찰 ‘특수통’ 계보 이으며 승승장구…”사람에 충성 안해” 항명에 스타덤
조국 사태로 文정부와 충돌…국힘 입당 후 전폭적 당심에 경선 돌파
본선서 ‘원팀’ 완성·野 단일화로 정치력 입증…국민 통합 기치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는 그의 캠페인 슬로건처럼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호출로 역사의 한가운데 섰다.

‘이게 나라냐’는 원성 속에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거치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불과 5년 만에 높았던 기대만큼이나 깊고 두터운 정권 교체 여론을 만들어낸 터다.

검찰총장으로서 현 정부와 대척점에 섰던 윤 당선인은 부정부패와 맞서 싸워온 자신의 인생 궤적을 발판 삼아 ‘별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평범한 엘리트 검사였던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다 좌천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파격 발탁된 그는 지난 정부에 대한 ‘적폐 수사’를 넘어 살아있는 권력에까지 칼날을 겨누다 미운털이 박혔고, 자신을 기용한 정권과 불화 끝에 결별했다.

이후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하고 대선판으로 직행하며 본인의 스토리를 ‘공정과 상식’의 시대정신으로 치환, 정권 교체의 깃발을 들었다.

평생 검사로만 살다 처음 정치권에 발을 디딘 ‘0선’의 윤 당선인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특유의 돌파력으로 여의도 문법을 깨며 제1야당의 대권 주자 자리를 거머쥐었다.

본선에 올라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게이트 연루 의혹을 부각하며, 내로남불에 지친 민심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친문을 뺀 모든 세력을 규합해 ‘빅텐트’를 펼치겠다는 애초 구상과 달리 오히려 일부 반명·친문(반이재명·친문재인) 세력의 지지를 받는 이례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정권 교체의 ‘도구’를 넘어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윤 당선인의 첫 번째 구호는 국민 통합이다. 이념과 진영에 따른 극한 대립을 해소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은 이제 온전히 그의 몫이다.

◇ 9수생 윤석열의 ‘운명’

1960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성자 씨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넉넉하고 학구적인 가정환경은 여유로우면서도 호기심 많은 성격의 밑거름이 됐다.

서울 대광초·충암중·충암고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방과 후 동대문운동장에 들러 야구 경기를 관람하기 즐겼다고 한다. 야구 명문 충암고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소득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부친의 영향으로 한때 경제학자를 꿈꿨다. 조금 더 피부로 와닿는 공부를 하겠다며 서울대 법대에 79학번으로 입학했다.

5·18 민주화운동 직전인 1980년 5월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석 달간 피신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려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본인이 “온 동네 관혼상제를 다 다녔다”고 회고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챙기다 낙방을 거듭한 탓이다.

1985년 법대 동기인 김선수 대법관이 학생운동 전력으로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낙방할 위기에 처하자 당시 여당 원내 총무였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일도 있었다.

이 의원은 윤 당선인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법대 동기로 ‘죽마고우’라 불리는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의 부친이었다. 김 대법관은 그해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다.

1991년 9번째 시험 직전에도 만사 제쳐놓고 결혼하는 친구 함을 지러 대구까지 달려갔는데, 그때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읽은 비상상고가 사흘 뒤 시험에 이례적으로 출제된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상상고 신청은 검찰총장만이 가진 고유 권한이다. 윤 당선인은 이를 두고 “운명”이라 말한 적이 있다.

거침 없던 ‘칼잡이’ 생활 26년

1994년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한 윤 당선인은 변호사로 개업하려다 3년만 경험해보자며 뛰어든 검찰에 26년간이나 몸담았다.

‘스타 검사’ 윤석열의 성장기는 반전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대구지검에서 초임 검사로 시작해 초반에는 늦깎이로 평범한 이력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 들어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에 투입되며 ‘칼잡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일했고, 1년 만에 “검찰청 복도에서 나는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친정으로 복귀한 뒤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맡았다.

선 굵은 수사 스타일로 이명재·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 까마득한 선배들의 총애를 받아 대형 사건 수사마다 차출됐다. 그 덕분에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과정에서 남다른 보스 기질로 ‘윤석열 사단’을 구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 당선인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국회 국정감사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내지른 국감장의 작심 발언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정권에 밉보여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 4년여간 유배지를 떠돌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이 무렵 민주당 핵심 인사로부터 총선 출마 권유를 받았을 땐 “검찰에 남아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 “후배들이 나를 정치 검사로 보지 않겠느냐”며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 文정부와 불화 끝에 광야로

특수통 검사로는 숨통이 끊긴 듯했던 윤 당선인은 2016년 탄핵 정국을 맞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위 ‘촛불 혁명’의 공신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됐다. ‘적폐 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를 진두지휘하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끌어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수감시켰다.

당시 보수 진영은 혹독한 수사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윤 당선인은 특검 내부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주장했다고 훗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사태는 오늘날 ‘정치인 윤석열’이 있게 한 변곡점이었다.

검찰 수장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문자 그대로 행동에 옮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밀어붙이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조 전 장관 딸의 입시 비리 의혹과 부인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뿐 아니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까지 파고들었다.

결국 정권과 전면전을 선포한 모양새가 됐다. 여권 인사들이 일제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시도하는 민주당과의 정면충돌이 겹치며 현 정권과의 불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윤 당선인은 결국 지난해 3월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사퇴의 변을 남기며 임기를 넉 달여 남기고 검찰총장직을 내려놨다.

국민의힘 접수한 정치 신인

반문의 기수를 찾던 야권은 ‘거물급 신인’을 환영했다.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섰던 윤 당선인은 자연스레 야권 대장주로 꼽혔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차례 연달아 패배하며 쪼그라들어 집권 플랜조차 마땅치 않았던 보수 진영은 윤 당선인을 대안으로 보고 러브콜을 날렸다.

3개월 남짓 두문불출하면서 기초체력을 다진 윤 후보는 ‘6·29 선언’을 통해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 정신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내겠다는 그의 출사표는 진보를 표방한 정권 주류 정치 세력의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지친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주변에선 윤 당선인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고, 인근 논산에 파평 윤씨 집성촌이 있다는 점을 고리로 충청 대망론을 불어넣기도 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만큼 초창기 적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윤석열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부각됐고, 과감하지만 서툰 화법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7월 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뒤로도 이준석 대표와의 불화설에 휩싸이는 등 좌충우돌했다.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이나 ‘개 사과’ SNS 글은 치명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다만 당내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 산전수전 다 겪은 경쟁자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받으면서도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정권 핵심에 맞서 싸우며 굴하지 않았다는 이미지 덕분에 당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보수 궤멸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낙인은 정권 교체의 대의명분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 단기간 정치력 ‘압축 수업’ 끝에 거머쥔 대권

대선 본선에 뛰어든 윤 당선인은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오르며 정치인으로 성장해갔다.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 해소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이 대표가 ‘윤핵관'(‘윤 당선인의 핵심 관계자’를 줄인 말)을 저격하며 지방을 돌아다니자 울산까지 직접 찾아가 심야 담판으로 사태를 봉합했다.

올해 1월 의원들이 이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했을 때도 통 크게 의총장을 방문해 이 대표와 손잡고 원팀을 선언했다.

삼고초려로 영입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자신에게 “연기만 하라”고 ‘독설’하자 선대위를 해산하고 그를 해촉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실무형 선대본부로 몸집을 줄인 윤 당선인은 호남과 2030 세대를 적극적으로 챙기며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공약도 쏟아냈다.

TV 토론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대장동 게이트 연루 의혹을 부각하며, 검사가 피의자를 취조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전략을 폈다.

윤 당선인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극적인 단일화로 정치력을 한 번 더 입증했다.

안 대표의 결렬 통보에 그동안의 협상 내용을 공개하는 맞불로 ‘밀당’을 벌이며, 완주를 공언하던 그로부터 자진 사퇴와 지지 선언을 끌어낸 것이다.

과반의 정권 교체 여론을 등에 업고 새 정부 키를 쥐는 데 성공한 윤 당선인은 여소야대의 불리한 원내 지형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그가 “민주당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멋진 협치”를 거듭 약속한 만큼 정치 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국민 통합과 민생 회복의 꿈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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