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7월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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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수감사절】 진정한 찬양과 감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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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19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코 명예, 부귀, 건강 등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것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 구원, 죄사함, 영생 등 신령한 복이요, 영원한 복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양할 이유와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라스도인들은 그 고난과 환란과 역경의 이유를 알고, 그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역설적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박국 선자자의 감사요, 바울 사도의 감사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산 소망이 끊어진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감사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복, 신령한 복, 구원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라고 고난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언제나 물질적인 복, 현세적인 복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받은 복은 어떤 경우라고 빼앗거나, 포기되거나, 살아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령한 복, 생명의 복, 구원의 복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 왕관” 혹은 “인간의 글로 표현된 글 중 가장 거룩한 글” 이라고 불리 울 만큼 매우 값진 말씀입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말씀의 사역자인 로이드 존스 목사님 에베소서를 가지고 무려 8년간 설교할 할 만큼, 진리의 보고입니다.

특별히 2019년도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사업의 실패나 패업, 직장을 잃은 힘든 경제고 속에 있는 분들, 질병과 투쟁 생활로 지친 분들, 가족 간의 갈등으로 별거 중에 있는 분들, 불의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분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고 깊은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무슨 감사냐?”, “무슨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나의 삶에는 감사라고 눈꼽 만치라고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감사라는 허울 좋은 이야기, 뚱단지 같은 말은 내 앞에서 내배지 말라?” 하면서 영적 분노와 깊은 회의 빠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중에 복음인 에베소서 1장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할 이유, 감사를 드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은 기복적인 복을 받을 때, 노래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 노래, 감사,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차원을 초월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현실적입니다. 기복적입니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고 있는 복은 현실을 초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복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업되는 복입니다. 에베소서 13-15절 중심으로 2019년 한 해동안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절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주: 1.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복을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2. 구속의 복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선택의 복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로 우리게 주신 복을 말합니다. 구속의 복은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얻는 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풍성한 은혜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은혜이다. 우리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 너무나 놀라운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기에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기 한계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풍성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죄 사함 곧 구속의 은혜입니다. 구속은 값을 대신 지불하고 샀다는 의미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자를 그 몸값을 지불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노예 시장과 같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마치 노예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속을 받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자입니다. 종은 자신의 인격이나 자신의 자율권이 없는 자입니다. 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자는 사탄과 마귀입니다. 결국 우리는 어둠의 영, 죄악의 영, 사탄의 지배를 받아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가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죄 속에 살았습니다. 영적 인신 매매단 사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사망밖에 없습니다. 그 죄의 종으로부터 구속 곧 자유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게 하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은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고통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치욕스런 죽음입니다. 가장 저주스런 죽음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예수님께서 외치실 만큼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끌려갔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과 질고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죄의 삯인 사망과 저주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하노라면, 나의 죄악된 모습, 나의 교만하고 나의 더럽고 나의 추악한 모습은 점점 드러나게 되고 나의 끔찍한 죄악이 들러 날수록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더욱 영롱하게 빛이 나고 그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얼마가 고귀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보배 피로 나의 지난 날 삶을 씻으시고 나의 흉악한 모습을 덮으시고 나의 죄악된 모습을 감추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감격은 현세적 복, 잠시 눈에 보이는 복, 이생의 자랑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이요, 감사요, 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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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정준모 목사
철학박사 및 선교학박사 Ph.D & D. Miss, 목사, 교수, 저술가 및 상담가, 말씀제일교회 담임 목사, 전 총신대 · 대신대 · 백석대 교수역임, CTS TV 대표이사 및 기독신문 발행인, 세계선교회 총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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